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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극치의 은유이며 따라서 철학이다

by Plato Won
이우환 조각,관계항,지각과 현상
이우환 作,무제
이우환 作,선으로부터
이우환 作,바람으로부터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천재의 표상,

메타포, 은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적 능력을 천재의 표상

이라고 말한다. 이는 지식인의 궁극적 목표는 은유적

능력의 극대화라는 다른 표현이다.


"지성의 촘촘한 그물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파동을 일으키는 감각적 힘,

예술의 힘이다."


지성의 촘촘한 그물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파동을 일으키는 감각적인 힘이 작동하면

은유의 극치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다.


예술의 미적 쾌감은 느낄 수는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예술을 인식하는 미적 판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절히 풀어놓은

철학자가 바로 임마뉴엘 칸트다.


칸트의 철학에 의하면

자연을 보고 경외감을 느끼거나

위대한 예술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적 판단에 굳이 이성의 도움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칸트 철학은

이런 인간의 인식의 오류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사고혁명 보고서다.


인간은 인식의 오류를 먹고산다.


그래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대적 영웅도 탄생하고,

풍차를 들이박는 돈키호테도 등장하여

역사의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드려다 본다.


점, 선, 여백의 예술로 유명한 이우환 화백의

예술의 힘은 최소한의 표현으로 삼라만상의 원리를

이끌어내는 것에 있다.

미술시장에서 작품가격이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인 이우환 작품의 힘은 극단의 은유의 힘이다.


이우환 작품은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바람으로부터>철과 돌의 조각작품까지 존재와

사물, 공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점에서 시작되어 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선으로 이어간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므로, 나 또한 점이며 선이다.

삼라만상이 나의 재생산이 아닌 것처럼

내가 표현하는 점 또한 늘 새로운 생명체가 되리니"


"無知의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찍는다.

그것은 시작이다. 그리는 것과 그려지지 않는 것을

관계 짓게 하는 짓이다. 터치와 논 터치의

겨룸과 상호침투의 간섭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여백작용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이 되게 해 준다."


이우환이 저서 <여백의 예술에서>

여백의 예술세계를 철학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돌덩이 하나를 철판에 무심한 듯 올려놓은

그의 조각작품에서 인간의 손때가 묻은 문명과

자연을 연결하고 있다. 극단의 절제된 표현이다.


자연물의 상징인 돌, 산업화의 상징인 철,

철은 돌에서 뽑아낸 물질이므로, 철 역시도

자연에서 추출된 것이다.


가장 극딘적인 대치가 동일점에서 출발한 조화다.

삼라만상은 결국은 한 점에서 출발했다 다시

한 점으로 돌아간다.


이우환 화백은 여백을 이렇게 정의한다.

"여백은 사람들을 침묵으로 이끌어가고

무한함을 호흡하게 만든다."


삼라만상을 꼬치꼬치 설명하려는 촘촘한 이성이

미꾸라지처럼 촘촘한 이성을 빠져나가 파동을

일으키는 감각적인 힘인 예술의 힘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여백이 가득한 예술은 극단의 은유적 표현이고

은유가 가득한 철학은 또다른 예술이다.

예술과 철학이 우리 곁에 있어야하는 이유다.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이며

극치의 은유이며 따라서 철학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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