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하겠지만 나는 그대가 더 궁금하다

by Plato Won
이반 나바로 作.칠레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거울과 조명으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달을 형상화한 작품,점식식사하러 갔다가 전시된 작품을 한컷 찍었다.

우리는 우리의 미약한 감각들을 동원해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해석할 때 여지없이

실수를 연발한다.


인간은 호방한 척 하지만 실상은 지극히 보수적이라

그동안 철저히 믿어왔던 고정관념 대로만 세상을

바라 뿐, 그 실체에 접근하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익숙지 않으니 혼란스러운 것이고

혼란스러우니 실재는 보이지 않고 어렴풋한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이럴 땐 답답한 집안의 창문을 열고 청량한 산공기를

마시면서 다시 사유하고 질문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이해한 사실일 뿐, 결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 자체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한

시동을 걸어놓은 것이 된다.


플라톤은 국가론 7권에서 <동굴의 비유>로

이러한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어두운 동굴 속에 갇힌 죄수와 같아,

동굴 속 의자에 꽁꽁 묶여 동굴벽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세로 태어났다. 죄수 뒤에는 무대가

있고 무대 위에는 횃불을 들고 모형들이 지나간다.

동굴 속 죄수들은 뒤를 돌아다볼 수 없으니

동굴 속 벽면에 비친 모형들의 그림자들이

실재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 중 한 죄수가 풀려나서 동굴 밖

세상으로 나와 실재 세상을 보게 된다. 이 죄수도 처음

에는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셔 혼란스러워하지만

이윽고 태양이 비친 실재의 세상을 보고 흥분한다.


흥분 속에 들뜬 이 죄수는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여전히 의자에 묶여 동굴벽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동료 죄수에게 바깥의 실재 세상을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동굴 속 죄수들은 바깥세상을

보고 온 동료를 실성한 사람이라 취급하며 그를

죽이려 든다.


여기까지가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 스토리다.


동굴 속에 사는 사람이 답답하다고 창문을 만들 수

있는가? 창문을 만들어 볼 들, 청량한 산공기를 들이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동굴 속에 갇혔다면 동굴을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다.


동굴 밖 실재 세상을 보고 온 동료의 말에 거부감이

아니라 호기심이 들 때 비로소 죄수는 동굴을 탈출할

의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동굴 속에서 창문을 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많이 알아갈수록 그 다양성과

복잡함에 놀란다, 그러나 내밀히 들여다보면 그

단순함과 순수함에 더 놀라게 된다.


세상은 복잡할수록 단순하고 순수하다.

복잡한 세상도 쪼갤 수 없는 단 히나의 원자인

알갱이들의 연결망 일 뿐이고,

그 연결하는 역학은 지금까지는 정확히 수학적 법칙을 따랐다고 확신했지만,

그것이 사실은 확률적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해 가는 단계이다.


집안의 공기가 답답할 때 창문을 열면 신선한 산공기

를 들이마실 수 있다. 그때의 그 청량감, 철학적 사유는 집안의 공기가 답답할 때 창문을 열어 산공기를 들이마

실 때 느끼는 그런 청랑감이다. 어린 동심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매일 청량한 산공기를 마시면 폐가 튼튼해지고

영혼도 맑아진다. 이를 습관적으로 행하면 어느듯

고정관념과 편견은 청량한 산공기에 녹아 없어지고

보이지 않던 미지의 세계가 품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철학적 사유의 힘 덕분이다.


인생은 심연의 바다이고 인간은 그 바다 위에

조그마한 나룻배를 띄워 노를 젓는 뱃사공이다.


뱃사공이 어찌 저 심연의 바다밑을 볼 수 있겠는가.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인 것이지.

그러나 인식 그 모험의 바다로 나가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면 저 오묘하기 그지없는 심연의 바닷속도

철학적 사유의 시선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것이 뱃사공의 낭만 아니겠는가.

맨날 뱃삯만 받고 나루터에서 강물만 왔다 갔다

해서야 어디 낭만이 생기겠는가.


뱃사공인 주제에 주제넘다고 욕을 해도,

먹고살기 바쁘다고, 쓸데없는 소리라고 잔소리를

해 대도 저 심연의 바닷속이 궁금한 걸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약돌 하나를

가지고 놀았을 뿐, 저 심연의 바닷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뉴턴도 궁금해하지

않았는가.


낭만을 품은 뱃사공이고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저 심연의 바닷속이 궁금하니까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왜 그것이 궁금하냐고 다시 묻는다면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지 않는 그대가 더 궁금해진다고

말하고 싶다.


"모르는데 도대체 왜 궁금하지 않은 건가요?"


자신의 생각 위에 또 다른 생각을 얹히고,

다시 그 위에 관점을 비트는 또또 다른 생각을

쌓아 올려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보려는 호기심,

그것이 인간을 살아숨쉬게 한다고 믿는다.


만약 누군가가 지식인이라고 지금까지 사회적

대접을 받았다면 그 지식으로 자신의 영달만 위하지

말고,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세상을 유의미하게

이끄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을

발동하는 것은 마땅히 지녀야 할 의무이지 않겠는가.


모르는데 궁금해하지 않고 디립다 외우기만 하는

대한민국 교육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새로운 세상을 궁금해 하는 내가 궁금하겠지만,

나는 모르는데 궁금해하지 않는 그대들이 더 궁금할

따름입니다.^^


Plato Won


Plato Won 作,'"MTB is free." 산악자전거란 말이야 음 그러니까 자유이지..공짜야기도 하고..그러니 많이 많이 즐기는 것이 그대 신생에 이로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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