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말한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by Plato Won
Plato Won 作,느릅나무는 자연이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뿌리의 의지로 자라난다.

"인간은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이다."

니체가 그의 저서 '도덕 계보학'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는 당연하게만

생각되는 이 사실에 의문을 던진다.


니체의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부터 약속을 하고 지키는 동물로 존재

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동물로 키워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강한

인간을 말한다. 약속을 어기고 싶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제압할 수 있는 극기의 힘을

갖는 사람만이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인식이다.


니체의 도덕 계보학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이런 강한 자는 자신을 잣대로 타인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존경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지킬 수 있는

강자를 존경하고 거짓말쟁이들을 경멸한다.


강한 자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고 느끼며 뿌듯해한다. 니체는 이러한 개인을 '주권자적 개인'이라 정의하며 이러한 사람이

니체가 말하는 '자기 자신의 주인'인 사람이다.


인간은 인간만의 특성으로 자랑하는

이성, 진지함, 감정의 통제, 사려, 분별 같은 특성은

사실은 사회가 인간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동물'로

만들기 위해서 개인들에게 행했던 형벌의 산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모든 좋은 것들의 근저에는 엄청난 피와 잔혹함이

어른거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은 연약한 자의 마조히즘이다"


니체는 천성적으로 강한 자들이 다른 연약한

자들에게 법과 질서를 새겨 넣었고, 양심의 가책은

이러한 강한 자들이 연약한 자들에게서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연약한 인간의 내면세계는 지신을 감시하는

양심과 감시당하는 본능과 욕망으로 자기 분열이

일어나고, 연약한 인간은 자신의 양심이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억누르고 학대하는 잔인함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잔인한 학대와 그러한

학대를 스스로 즐기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고 도덕적 양심이라는 것이

도덕률에 대한 니체의 인식 전반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죄의식은 가장 무서운 병'으로

간주한 니체는 '후회도 자학이 되면 병'이라고

진단한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더 바보짓은 없다.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계속해서 의연하게 살아가야 한다."


'후회'에 대한 니체의 인식은

그의 저서 '도덕 계보학'에 잘 나타나 있다.


니체가 말한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되 지속적인 후회로 자기

자신을 갉아먹지 말아야 한다. 후회도 자신의

능동적인 힘을 내부로 향해서 자신을 괴롭히는데

사용하지 말고, 외부로 방출할 용기를 가지고

떨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타인이 정해준 약속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정한 약속이 있어야 하고, 이를 지킬 의지와

지켜나가는 강한 힘이 있어야 한다.


자유란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에게 정한 약속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약속을 지키는 강한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위대한 것도 인간이고,

어리석은 것도 인간이고

사악하고 교만만 것도 인간의 모습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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