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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중독적 쾌감이고, 열정은 미학적 쾌감이다

by Plato Won
Y.H.Kwon 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새해 해돋이


두 번 살 수도 없고 한 번 사는 인생이니,

후회하지 않도록 자기 의지대로 하고 싶은 일 하며

씩씩하고 또렷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상쾌하고 즐거운 삶이란 바로 그런 삶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인생에서

상쾌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쾌감'을 추구한다.


그러나 '쾌감'이라고 다 같은 쾌감이 아니다.

쾌감에는 '미학적 쾌감'과 '중독적 쾌감'이 있다.


스스로 주체적 판단을 내리고

즐길 수 있다면 '미학적 쾌감'이다.


반면,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빠져드는 욕망은 '중독적 쾌감'이다.


긍정적 사고로 열정을 불태우는 삶,

미학적 쾌감이다.


습관적으로 게으르고, 핑곗거리가 많은 삶.

중독적 쾌감이다.


'미학적 쾌감'은 우리의 삶을 자아실현의

유토피아 세계로 인도하고, 중독적 쾌감은

우리 영혼과 육체를 디스토피아 세계로 인도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이 아니다.


자유로운 삶이란 자신 내면이 정한

양심과 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인간의 근원적 쾌감은 편안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설 때 온다.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불태워 세상에

유익함을 선사하는 것에 쾌감을 느낄 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짜릿한 쾌감이 샘솟는 삶이다.


무의식에 지배당할수록 인간은 습관적으로

게으름에 젖어들 수밖에 없고, 주체성이 결여된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 상태를 벌떡 깨워

미학적 쾌감을 추구해야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주체적이고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에는 권태나 나태함,

게으름, 핑계 같은 중독적 쾌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사는 삶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 게으름에 끌려다니는

종속된 삶일 뿐이다.


무의식적 편안함을 추구하면 습관적인

게으름에 빠져들고, 게으름에 익숙해지면

반드시 권태가 따라붙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기 스스로 주체적 판단을 내릴 수도 없어,

정신도, 육체도 나른함으로 빠져드는

망조든 삶이 침착하게 된다.


게으름은 중독적 쾌감이고,

열정은 미학적 쾌감이다.


편안함은 쾌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권태를 선물한다.


진정한 쾌감은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잠재력을 벌떡 깨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설 때 찾아온다.

헬스장에서 느꼈던 그런 쾌감은 느슨함이

아니라 타이트함을 뛰어넘었을 때 온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열정은 자신의 욕심만

버리면 포기할 수 있으므로 쉬이 식을 수 있지만,


세상을 보다 유익하게 만들고자 하는 열정은

내면의 잠자는 잠재력을 벌떡 깨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힘을 솟구치게 한다.

그런 삶이 미학적 쾌감을 누리는 삶이다.


미학적 쾌감은 위대한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위대한 열정과 의지를 품은 사람의 몫이다.


나는 항상 새벽녘 떠오르는 여명을 맞이하면서

이글거리는 내 열정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자

진득한 노력을 퍼붓는데 재미를 느낀다.


Plato Won


Plato Won 作 판교 태봉산에서 바라본 새해 해돋이 나는 항상 이글거리는 여명을 보면서 이글거리는 내 열정에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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