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ato Won Feb 17. 2024

그들이 뭘 아는가? 내 삶은 내가 정하는 것이지

Plato Won 作,봄이 성큼엉큼 다기온다


"그들이 뭘 아는가?

내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


내가 내 을 올바르게 스스로 선택하려면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윤리적 판단 기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윤리적 판단 기준'이란 무엇인가?


그 행위가 윤리적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주관적 의도가 모든 인간이 동의할 수 있는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에 상응해야 한다.


자신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된 행동이

자연법과 일치하는지 판단하는 주체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란 자신의 내면의 양심을 말한다.


 '양심'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어떠한 행위에서 주관적 의도와

객관적 기준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곧 양심이다."


객관적 기준이란 곧 자연법이다.


자연법이란

모든 인간이 동의할 수 있는 이성의 명령이고,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순리'다.


스스로 자, 그럴 연,

自然은 스스로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하므로,

자면의 순리에 따르는 삶이

곧 자연법을 준수하며  사는 이다.


따라서 나를 모르는 그들이 이러쿵저러쿵

나를 향해 험담을 하든, 조잘대더라도

자연법을 따르는  내면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내 삶은 나의 의지대로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너무 이완된 양심도 善이 아니지만,

반대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부끄러워할

상황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완고한 양심도 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제가 하나 생긴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법 이전에

내면의 양심이 윤리적 법정이기는 하지만

매 순간순간 행동할 때마다 일일이 양심을

끄집어내어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습관의 德'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행동을 실행하는

습관의 덕(Virtue) 필요한 것이다.


옛 성현들이 이구동성으로 일관되게  

강조하는 윤리적 행동의 핵심은

 '습관의 덕'이다.


습관적 덕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강조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제시한다.


노자는 '무위는 유위'라고 말하고,

장자는 "무용한 것이 유용한 것"이라고 말하며

덧없는 욕심을 걷어낼 것을 주문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 사상을 도출했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카뮈가

"삶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 색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말의 형태는 다르지만

습관적 이 즉각적으로 동하도록

실천방법을 논한다는 점에서는 성현들의

주장이 일치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성현들이

습관적 적을 그렇게 강조하는가.


인간은 자기 신의 양심을 올바로 형성할

책임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양심으로 너무 옥죌

필요는 없다.


비윤리적인 이완된 양상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자책하는 완고한 양심에 갇힐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뭘 아는가?

내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


모든 인간이 동의할 수 있는

이성의 명령에 따를 내면의 양심만 충분하다면

세상 눈치 볼 일 없다.


Plato.Won


작가의 이전글 행복한 삶이 가치 있는 삶이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