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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Apr 21. 2019

9-1.올바른 국가와 올바른 개인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 토스가 간청한
정의가 항상 옳고 이득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예리한 통찰력 없이 접근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개인의 정의를 논하기 전에 보다 큰 국가의 정의부터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눈이 나쁜 사람에게 먼 곳의 작은 글자를 읽으라면 읽어 낼 수가 없다. 큰 글자를 먼저 읽고 차츰 작은 글자로 옮겨가는 것이 글을 읽기 쉽다. 같은 논리로 국가의 정의부터 생각해 보고 어떤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인지
파악해보고 나면 정의로운 개인의 모습도 그려지기 쉽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정의를 논하기 전에 국가의 발생 단계부터 설명한다. 국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독립된 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는 너무 어렵고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의 능력은 아주 제한되어 있으니 한 사람만의 힘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결국 사람은 힘을 합치게 됐고, 이러한 집단이 모여 국가가 되었다. 국가에 속한 인간은 태어난 환경과 소질이 다르므로 일을 하는 데도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질에 따라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다.

자연스럽게 농부, 수공업자, 목수, 대장장이나 재단사, 상인이 생겨났다. 머리를 쓰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체력이 충분한 사람들은 자신의 체력을 팔아
돈을 버는 임금 노동자도 생겨난다. 어느덧 근사한 공동체는 하나의 근사한 국가로 성장한다.

국가는 국민들을 구성해 놓았으니 그들이 집을 짓고 필요한 생필품을 마련하여 살아가고 가난과 전쟁을 대비해 음식을 비축하고 가족들을 돌본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한 생활양식에서 벗어나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게 된다. 때로는 창부를, 때로는 예술품이나 금, 상아 같은 사치품도 필요하다. 늘어나는 국민들과 늘어나는 욕망을 충족하느라 국가는 더욱 커진다. 예술가나 시인, 배우, 무용수 등도 필요하고 가정교사, 유모, 시녀, 이발사, 의사 등도
늘어난다. 급기야 인구가 늘면서 충분했던 자원과 국토는 비좁아지고 국토가 부족하니 결국 전쟁을
벌인다. 전쟁을 하자면 상대국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의 규모도 늘려야 하고 전쟁의 기술도 필요하다. 이 기술은 한 나라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니 다른 어떤 기술보다도 중요하고, 국가는 국가를 수호하는 수호자를 기르는 데 최대의 관심과 기술을
쏟아부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잘하려면 맡은 바 일에 소질을 타고나야 하듯 국가의 수호자도 그 성품을 잘 타고 난 사람이 선발되어야 한다. 젊은이든 개든, 적을 발견했을 때 양쪽 다 민첩해야 하고, 과감하게 추적해야 하고,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 그래서
수호자가 되려면 동물이건 사람이건 기백이 있어야 한다. 수호자의 천품과 기질이 기백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특히 친구에게난 국민들에게 난폭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적들에 앞서 국민들을 먼저 파괴할 것이다. 결국 대담한 기백과 온순한 기질의 소유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 둘의 성질은 상반되는 것이니 동시에 갖추기란
매우 어렵다. 혈통 좋은 개는 낯익은 사람이나 친숙한 사람에게는 온순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사납게 군다. 개는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따라 적과 동지를 구분한다. 그러니 앎과 모름에 대한 배움이 지극히 동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배움을 사랑함은 곧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이게 곧 철학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친구를 부드럽게 대하는 자는 본성에 있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듯 국가의 수호자가 될 사람은 지혜로운 데다 기백과 함께 용맹함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수호자가 될 사람은 기백과 함께 철학자로서의 기질도 갖춰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를 찾음에 있어 국가는 완벽하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한다. 완벽한 국가는 지혜롭고, 용감하고, 절제 있고, 정의롭다. 지혜로운 국가는 가장 적은 수를 가진 수호자들의 지식 덕분에 지혜로워졌다고 봐야 한다. 지혜로운 국가는 통치자들이 지혜가 충만하고 좋은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는 국가를 말한다. 또한 국가에서 용감을 논할 때 용기라는 덕목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전장에서 싸우는 전사 계급이다. 그들이 용감하냐 아니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 용감한 자들은 입법자가 교육을 통해 가르쳐준 두려움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아무리 어렵고 두려운 일이 닥쳐도 의지를 꺽지 않고 어떠한 쾌락이나 공포로도 두려움에 대한 분별과 올바른 견해를 유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를 용기라고 부르며 전사 계급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이제 이상적인 국가에서 찾아야 하는 덕목은
절제다. 절제는 지혜나 용기보다 더 조화로운 측면이 있다. 절제란 일종의 질서로서, 쾌락이나 욕망을
극복하는 것으로 흔히 극기, 즉 자기 자신을 이긴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에 더 나은 부분과 못한 부분이 있다면 더 나은 부분이 못한 부분을 이길 때를 말한다. 국가에서도 더 나은 부분이 못한 부분을 이길 때 그 국가를 절제 있는 국가라고 부른다. 국가에서 절제는 특히 노예들, 어린이나 부녀자들 생산자 계급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현실에 급급한 욕망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절제라는 덕목은 강한 음이나 중간 음이나 약한 음이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음정이 나오듯 각각의 계급이 한마음을 이룰 때 드러난다. 한마음은 조화로움을 통해 나타나고, 그 조화로움이 절제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란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충실하되 다른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의란 지금까지 논의해왔던 지혜, 용기, 절제의 원동력인 동시에 그것들이 잘 보전되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 정의이다. 목공이 제화공 일을 한다거나 제화공이 목공일을 하기 위해 연장과 임무를 바꾼다면 국가에 큰 손실이다.
천성이 장사꾼인 사람이 나라를 지키는 전사가 되려 하거나 용기의 덕목을 지닌 전사가 지혜의 덕목이 필요한 통치자가 되려 한다면 국가에 큰 해악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 각자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것을 불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국가의 정의를 개인에게도 대입해서 그 결과가 일치한다면 정의의 불꽃은 피어날 것이다. 정의의 문제만 고려한다면 정의로운 사람과 정의로운 국가는 다를 바가 없다. 국가에는 서로 다른 계급이 있다. 장사꾼이나 기술자처럼 돈벌이에 종사하는 생산자 계급, 통치자의 보조자이며 나라가 위급할 때 나라를 지키는 전사 계급,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국가의 경우처럼 개인도 그 정신이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우리 욕망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갈증과 허기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 마음속에 뭔가가 마시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힘이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이성의 힘이다. 본능적 욕구에 저항하는 힘인 이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정신 속에는 이와 같이 두 가지 원리인 욕망과 이성의 힘이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분노할 경우 보이게 되는 기백 같은 기상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기백은 어떤 욕구가 이서에 저항하도록 강요하면 내부에서 갈등하다 이성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정신 속엔 국가의 세 계급이 있듯 우리의 영혼에도 기백적인 것이 제3의 것으로 있어서 이성적인 것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따라서 욕구와는 다른 것으로 판명된 열정이나 기백이 이성과도 별 개의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기백에 가득 차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성이 갖춰지는 것만 봐도 기백이 이성과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정의를 논하면서 거친 바다를 건너 해안에 도달했다. 국가에 있는 것과 같은 덕목들이 개인에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수 또한 같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 역시 국가의 지혜로움을 획득하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지혜로움을 터득할 수 있다. 국가에 있어 정의란 세 계급이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듯 개인의 정의로움도 각자의 내면에 있는
세 부분이 맡은 바 자기 일을 올바로 수행할 때, 그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지혜로우며 전체 정신을 관할하는 이성적인 부분이 통치자의 역할을 맡아야 하고, 열정이나 기백과 같은 부분이 이성에 협력하고 지배받아야 하며
이 두 부분이 제대로 양육되어 절제를 지니고 욕망을 잘 다스릴 때 정의로움은 달성된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욕망의 힘으로 가득 차 있어서 관리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재물욕, 애욕, 권력욕 등
끊임없이 우리의 이성적인 부분을 시험하려 들므로 이들에게 혼을 빼앗기지 않도록 늘 감시해야 한다. 개인의 정의로움은 이성적인 부분은 고결한 언어와 학문으로 격려하고 고무하고, 열정적인 기백은 하모니와 리듬으로 달래고 순화시켜서 필요한 욕망은 장려하고 불필요한 욕망이나 불법적 인욕 망은 절제시킬 때 올바름은 달성된다.

정의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 이는 국가나 개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결국 정의란 외면적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잘 조절하고 지배와 복종, 협력을 마치 조화로운 음정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듯이 변주하는 일이다. 그것이 절제고 그 절제의 결과물이 인격이다. 그런 인격이 갖춰진 후에 우리는 비로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정의로운 국가와 개인을 발견했으므로 부정을 발견하기는 쉽다. 정의를 구성하는 세 부분 사이의 싸움이나 간섭, 혹은 정신 전체에 대한 일부의 반란이 부정이다. 이러한 혼란을 통해
무질서와 비겁, 무지 같은 악덕이 출몰한다고 말한다.

이로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 토스의 간청 중 정의의 기원과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마무리 짓고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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