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ato Won Apr 21. 2019

8.기게스 반지를 통해 본 올바름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의 개념을 설명하며 불의가 정의보다 더 이익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불의를 저지르려고 한다고
주장하는 점을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모든 사물들엔 각자의 고유한 기능이 있다. 그 고유한 기능은 그것만이 해낼 수 있고 잘 해낼 있는 기능이므로 훌륭한 기능이라 말한다. 그 고유하고 훌륭한 기능을 우리는 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눈의 덕도 귀의 덕도 있다. 눈과 귀가 그 덕을 잃으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이는 눈과 귀가 악덕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 정신에도 고유한 기능이 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의 기능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정신에도 덕이 있어 훌륭하지 못한 덕은 그 고유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 즉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하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따라서 악덕에 빠진 불의한 사람의 삶이 덕에 심취한 정의로운 사람의 삶보다 결코 이득 일리 없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하며 정의로운 삶이 곧 이득이라고 트라시마코스에게 말한다.

이때 언제나 논쟁하길 좋아하는 글라우콘이 트라시마코스의 뒤를 이어받아 소크라테스의 발목을 잡고 대화를 이어간다.

글라우콘은 말한다.
선생님 저는 아직도 정의나 불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헤갈립니다. 과연 정의나 불의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것들이 영혼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묻고 싶습니다.

첫째, 정의는 무엇이며 그 기원은 무엇인가 하는 것, 둘째 사람들이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그것이
선해서라기보다 불가피한 것이어서라는 것, 셋째
사람들의 불의한 행동은 생활 측면에서 정의로운
삶보다 낫다는 판단에 기인하는데 그 점에 일리가
없지 않다는 것에 대해 반박해주시고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정의롭게 행동할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정의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정의란 일종의 타협책입니다. 불의와 불의의 타협책입니다. 옳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제재를 받지 않는 사람과 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보복할 힘이
없는 사람, 양자 사이의 타협책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심에 따라, 이익에 따라 행동합니다라고 말하며 BC 7세기 고대 국가 리디아에서 양 치기였다가 왕권을 찬탈한 기게스의 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음은 전설로 내려오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이다. 기게스는 소아시아 서부에 있던 고대국가 리디아 왕국의 왕을 섬기던 양치기였다. 기게스가 양을 치고 있던 어느 날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내리고 지진이 났다. 폭우와 지진이 지나간 후 정신을 차린 기게스가 자신이 풀을 먹이던 곳을 보니 땅이 갈라져 있었고 깜짝 놀란 기게스는 그 갈라진 땅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서 기게스는 속 안이 텅 비어있는 커다란 청동 말을 발견하고 그 신비로운 청동 말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시신의 손에는 금반지만 끼워져 있을 뿐 아무것도 걸친 게 없었다. 기게스는 호기심에 금반지를 빼들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무심고 반지를 끼고 다니다가 어느 날 반지를 돌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게스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에 놀란 기게스는 다시 반지를 원래 방향대로 돌리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기해진 기게스는 여러 번 반복해서 반지를 돌려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착한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던 기게스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반지가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 들어냈다 하는 요술 반지라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흑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착한 양치기 소년이 갑자기 리디아의 왕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반지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리디아와 왕을 죽이고 자신이
리디아의 왕이 될 수 있겠다는 욕심이 든 것이다.
기게스는 그 욕심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실행에 옮긴다. 기게스는 왕에게 가는 사자들의 틈에 끼어
왕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왕비를 겁탈하고 왕비와 정을 통한 뒤 왕비를 꼬셔 왕을 죽이게 하고 왕국을 차지해서 드디어 리디아 왕국의 왕으로 등극한다.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라는 고대 전설을 들면서 안전하게 부정을 행할 수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악행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단지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시치미를 떼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신의 차원에서나 인간의 차원에서나 부정한 삶이 선량 한자의 삶보다 더 낫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때 갑자기 글라우콘의 형제인 아데이만 토스가 끼어들며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글라우콘과 다른 관점에서 정의의 문제를 개진한다.

그는 정의롭게 살라는 말은 정의 자체를 찬양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선한 일을 하면 평판이 좋아지고 좋은 배필을 만나 훌륭한 결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악과 불의에 경도되는 것은, 정의나 덕을 지키기 위해 드는 수고로움에 비해 손쉽게 어떤 결과물을 얻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데이만 토스는 정의는 불의보다 우월하며 모든 면에서 최고의 선이라는 것을 확증시켜달라고 말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 토스의 정의에 대한 신념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그 일을 규명함이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정의가 모욕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냥 있을 수도 없다고 선언하고, 최선을 다해 정의를 옹호하겠노라고 말하며 드디어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머나먼 철학 여행을 떠나며 대화는 깊어만 다.


Plato Won


작가의 이전글 9-1.올바른 국가와 올바른 개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