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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Apr 27. 2019

10-1. 노자와 소크라테스는 카타르시스를 아는 철학자

그리스어로 '카타르시스'는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 잠재된 괴물이 있다. 그 괴물은 불현듯 뜻하지 않게 무심코 시시때때로 나타나 인간을
괴롭힌다.'키가 작다, 흙수저다, 가난하다, 미래가 없다, 불안하다, 등등'의 모습으로 인간 내면에 안착해
있다. 그 괴물은 바로 인간이 가진 콤플렉스의 이미지다.


카타르시스는 '정화'혹은 '배설'로 번역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리스 비극 공연의

궁극적인 기능을 카타르시스라고 말했다.


비극의 주인공이 그리는 비참한 운명에 의해서 관중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유발되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정념이 어떤 형태로든 순화된다고 하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 작용으로
카타르시스는 해석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카타르시스는 무의식 속에 잠겨있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말, 행위, 감정으로 밖으로 발산시켜 노이로제를 치료하려는 정신요법을 의미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깨달음이다. 그리스 비극을

보는 관객이 주인공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해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하는 깨달음을 준다.

또 하나는, 감정적인 정화이거나 치료다. 비극의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자신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주인공이 겪는 공포를 함께 느끼고 주인공에 대한 연민으로 함께 눈물을 흘린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은 그 주인공으로부터 빠져나와 다시

자신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배설해야 할 감정의 찌꺼기를 버리는 정신적인 정화가 카타르시스다. 여자들이 매달하는 월경도 몸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다.

우리 내면에 무엇인가의 콤플렉스가 있다면 과감히 드러내고 인정하면 드디어 찌꺼기를 배출하는
카타르시스가 온다. 그렇게 비워진 내면의 공간은
새로운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던가?'비우면 채워지고 차면
기울고 기울면 사라지사라지고 없어지면 새로
채워진다'라고

우리 내면에 있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콤플렉스는 만 천하에 드러내고,있는 그대로의
평가를 받고 인정하면 된다. 그 순간 그동안 꽁꽁

묶어놓았던 비밀스러운 콤플렉스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다. 찌꺼기는 배설되고 카타르시스가 오면 어느 순간 새로운 무엇인가의 가치가 담긴다.

비우면 채워진다는 노자의 가르침이나

 無知의 知,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앎의 출발하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나 다 정신적인 찌꺼기를 드러내고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카타르시스적 발상 아니겠는가?

패럴랙스 생각열기를 통해 사유하고 질문하면
정신적 카타르시스가 온다는 점 숙고할 필요가 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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