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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May 19. 2019

CHAPTER 1. 플라톤, 서양 철학의 터전이자 언덕

Who is Plato?

지혜를 가진 哲人이 왕이 되든지,왕이 哲人이 되든지,그도 아니면  왕이 물러나야 한다.

"나는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과,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과,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

소크라테스에 매료된 나머지 그의 제자가 되어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세상에 남긴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경탄입니다.

플라톤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그리스 아테네의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아버지는 아테네 마지막 왕(크드로스)의 후예였고,어머니는 과두정권 우두머리(크리티아스)의 사촌이었습니다.

플라톤은 '문학소년'으로 불릴 만큼 일찍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유년시절부터 레슬링 선수로도 활약했을 만큼 신체적으로도 상당한 단련을 받았습니다.당시 플라톤을 가르친 체육 교사가
"체격이 좋고 이마가 넓은"그를 평평하다는 뜻의
'Platon'으로 불렀는데,결국 그의 이름이 되었다는군요.

어렸을 적부터 시를 쓰고 낭송하기를 즐겼던 플라톤은 어느 날 극장 앞에서 우연히 소크라테스를 보았는데,그가 젊은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 감화를 입어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하지만 그보다는 플라톤의 삼촌이 문학 소년인 조카를 '아테네의 현인'으로 불리던 소크라테스에게 보내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플라톤이 제자로서 본격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20세 무렵부터였습니다.하지만 그때만 해도 플라톤은 집안의 전통에 따라 정치가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당시에는 철학 공부를 대개 훌륭한 정치가가 되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기도 했으니까요.그렇게 정치가의 큰 꿈을 키워가던 플라톤은 28세(기원전 399년)때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인생의
행로를 바꿉니다.

그 사건이란,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으며 신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처형된 것을 말합니다.후대의 철학자들은 이 일을 두고 "아테네의 정치가 철학에 죄를 지었다"며 날선 비판을 가했습니다.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간 어이없는 상황에 충격을 받은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절망합니다.
이때의 일이 뒷날 그의 <국가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데,그는 여기서 민주정치를 불신하고 지혜를 가진 철인(哲人 철학자)이 통치하는 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설정합니다.이처럼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불신한 플라톤은 끝내 정치가의 길을 버리고 구도의 길을 떠납니다.

사형 집행 전에 소크라테스를 구출하려 했던 일로
정적들의 의심을 산 플라톤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아테네를 탈출하여 한동안 메가라(그리스 남부위 도시국가)에서 은신하다가 이윽고 이집트를 거쳐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떠돌며 사유와 질문을 통해 철학적 토대를 넓히고 다집니다.

플라톤은 40세(기원전 387)에 이르러 시라쿠사(시칠리아의 수도)의 참주 디오니시오스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이상국가'를 설계하게 됩니다.이상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수많은 민중을 교화시키는 것보다 군주 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사상이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그래서 디오니시오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지요.

하지만 애초에 참주 디오니시오스와 철인 플라톤은 양립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요.두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플라톤이 펴는 국가론의 핵심이 뭡니까?지혜를 가진 철인이 왕이 되든지,왕이 철인이 되든지,그도 아니면 왕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갈등으로 두 사람 사이가 날로 껄끄러워지던 참에 플라톤은 "참주란 자는 비겁한 자 중에서도 가장 비겁한 자"라며 그만 용의 역린을 건들고 맙니다.이에 격분한 디오니시오스는 플라톤을 죽이려다 말고 스파르타의 사절단에게 노예로 넘겨버립니다.노예시장에 팔려나간 플라톤은 부유한 상인 안니케리스(키레네학파의 쾌락주의자)가 몸값을 치러줌으로써 가까스로 풀려나 아테네로 돌아옵니다.이후 플라톤의 동료들이 돈을 모아 안니케리스에게 갚으러 하자 그는 "그대들만이 철학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끝내 그 돈을받지 않습니다.플라톤은 그 돈으로 최초의 대학이자 철학의 전당인 '아카데메이아'를 세웁니다.그때가 기원전 386년인데 529년에 폐교될 때까지 아카데메이아는 900여 년간 숱한 인재를 배출합니다.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아카데메이아에서 20년간 공부하지요.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을 비롯한 많은 저술이 여기서 씌어졌습니다.

아카데메이아에는 산술,기하학,천문학 수업과 함께 예비훈련을 거쳐 철인 지도자의 소양에 필요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무엇보다 기하학은 철학적 사유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서 건물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이 문으로 들어오지 마라"는 현판을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80세(기원전 347)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아카데메이아에 은거해 저술과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서양 철학의 반석을 마련합니다.'위대한 소크라테스'도 그의 저술을 통해 비로소 체계화되어
전해짐으로써 서양 철학은 빛나는 등대를 갖게 되었지요.

사실 소크라테스는 단 한 편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는 플라톤의 저술(40여 편의 대화편)
을 통해서 그의 철학사상을 만나고 있습니다.플라톤은 "소크라테스로 태어나 소크라테스로 자랐고 소크라테스가 되었다"고 할 만큼 스승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요.대화편 전편에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는데,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자신의 철학사상을 펼칩니다.

플라톤의 대표 저서는 <국가론>이라 할 수 있는데,"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철학 책이자
윤리학 책이며,"이상국가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논하는 정치학 책이기도 하며,"지혜를 지닌
통치자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를 논하는 교육학 책입니다.그런가 하면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것"을 논하는 형이상학 책이자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심리학 책이기도 합니다.가히 학문의 백과사전으로,인류 지성사에 커다란 울림을 준 텍스트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1861~1941)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로 플라톤을 찬사했습니다.

"유럽의 철학 전통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플라톤에 대한 잇따른 각주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플라톤의 저작에서 마구 발췌하여 꿰맞춘 학자들의 도덕적 사고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나는 플라톤의 저작에서 퍼져나간 일반 개념의 풍부함을 말하는 것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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