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공화정의 이상을 향하여

3-5,루소 사회계약론

by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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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의 이상을 향하여

(1) 로마 공화정의 정신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특정 알파벳 약자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로마를 상징하는 문양에서부터 각종 주화, 공공건물과 분수대, 심지어 맨홀 뚜껑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숨어 있는

이 약자를 발견할 수 있지요.


저명한 웅변가이자 공화정의

수호자였던 키케로의 연설문,

리비우스의 역사서 등, 로마 문헌에도

이 약자는 단골로 등장합니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 검투사의 팔뚝에도 새겨져 있으며, 오늘날 로마시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바로 SPQR!


로마를 상징하는 이 약자는 라틴어 ‘세나투스 포풀루스퀘 로마누스

(Senātus Populusque Rōmānus)’

에서 알파벳 머리글자와 중간자를 조합한 표현입니다.


‘로마의 원로원과 대중’ 또는

‘원로원과 국민의 집단 지도 체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한마디로 원로원을 중심으로 국민이 합심하여 정치를 이끌어 가는 로마 공화정의 정신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2) 로마 공화정의 성격


SPQR로 대표되는 로마 공화정은 혼합정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2명의 집정관이 행정과 군사를

총괄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는

군주정과 닮았습니다.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은 귀족정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시민들이 모여 국가의 문제를 결정하는 민회는

민주정의 요소라고 볼 수 있지요.


로마는 특정 집단에만 유리한 정치 체제를 배격하고 귀족과 평민 간의 이익을 조화시키고자 애썼습니다.


이는 개별의지나 전체의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반의지 실현을 강조한 루소의 사상과 일치합니다.


(3) 현대 공화국의 모델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의 황제 즉위를 기점으로 로마는 공화국에서 제국이 되었습니다.


이후 공화국이 세계무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수립된 서기 7세기 후반의 일이지요.


하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은 실세였던 귀족들이 권력을 나누어 갖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공화국에서도 특정 가문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등,무늬만 공화국인 도시국가가 많았습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피렌체 공화국의 분위기 역시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로마사 논고』를 쓴 목적도 겉으로만 공화정을 채택했을 뿐,

국민 주권과 법치라는 공화정의 정신은 무시되었던 그 당시 이탈리아반도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공화정의 역사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1789년 미합중국 정부 수립을 전후해서입니다.


당시 미국의 지식인들은 새롭게 출발하는 독립국에 걸맞게,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구현하고자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공화정을 본보기로 삼아 헌법의 기틀을 마련했지요.


실제로 미국의 정치 체제는 로마 공화정과 매우 흡사합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두 명의 집정관에 대응되고,양원제의 상원과 하원은 각각 원로원, 민회와 짝을 이룹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공화국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들이 잇따라 독립하면서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처럼 공화정을 채택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혼합정의 성격을 띤 로마 공화정이야말로 현대 공화국의 모델

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자, 이제부터 추상화를 통해

로마 공화정의 정신을 뒷받침해 준 제도들의 면면을 알아볼까요?

소담스러운 꽃을 피운 장미.

루소가 꿈꾼 이상적인 정치의 모델인

로마 공화정을 상징합니다.

유리 위로 세 개의 구멍이 나 있습니다.

구멍 주위로 많은 균열과 흥건한 핏자국이 보이네요.

‘유리’는 로마 사회를 의미합니다.


로마를 지탱해 온 정치 체제의 토대는

구성원들 간의 힘의 균형이고,

이는 다양한 세력 간의 견제와 권력 분립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멍’은 힘의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상징하지요.


이 ‘구멍’에 해당하는 요인 중 하나가 귀족의 독주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이 구멍 위로 장미가 자라나서 꽃망울을 틔웠습니다.장미가 물기를 머금은 흙이 아니라 딱딱한 유리 위로 자라난 것은

로마 공화정이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로마에서 민회와 호민관은 귀족의 독주를 견제하는 장치였습니다.


민회의 경우, 귀족만 참여하는 쿠리아 민회,100명의 부대를 단위로 하는 백인대 민회, 선거구 단위로 투표권을 지닌 부족 민회로 나뉩니다.


로마 시민은 이들 민회 중 하나에 등록되어 있었는데,모든 법은 민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행정관 역시 민회를 통해서만 선출될 수 있었습니다.


호민관은 평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평민 중에서 선출한 관직입니다.


평민들의 대의 기관인 평민회 의장으로서 정무관과 원로원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내부의 갈등이 다소 가라앉았는지,

두 군데의 구멍이 메워지고, 주변의 균열도 사라졌습니다.


남아 있는 구멍과 균열, 핏자국에 자연스레 눈이 가네요.


내부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해 간 로마에서는 비상시에 한하여 독재를 허용하는 유연함을 발휘했습니다.


원로원의 추천, 평민회의 승인을 거쳐

두 집정관 중 한 명이 독재관에 임명되어 전권을 부여받았지요.


구멍과 균열, 핏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 장미 꽃송이가 화사한

빛을 발합니다.


이는 도덕성을 중시했던

로마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그 예로는 감찰관직을 들 수 있습니다.


원로원 의원의 선출 및 제명권, 품행이 불량한 시민 추방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감찰관에게 부여한 이유는 여론의 타락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건전한 풍속을 유지하기 위해서지요.


구멍과 균열, 핏자국까지 모두

사라진 지금,장미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결코 위대하지 않았던 로마의 시작처럼

로마 공화정 역시 모든 점에서 완벽할 수는 없었습니다.


좋은 제도 앞에서도 권력의 속성은

끊임없이 균열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호민관직은 평민회의 의결이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면서 권한이 커지자,

공화정 말기에 이르러서는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공화정 초기만 해도 독재관직에 크게 의존하던 로마가 말기에 들어 이를 견제한 이유도 권력의 속성 때문입니다.


위기가 지나면 독재가 폭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임기를 늘려 종신 독재관이 된 카이사르는 왕위를 노린다는 소문에 휩싸였고, 그로부터 1개월 뒤에 암살당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몰락의 징조는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던 전성기에 이미 나타나 있었습니다.


물질적 풍요의 독점으로 인해

귀족과 평민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순수했던 공화정의 취지가 변질된 것입니다.


어쩌면 로마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공화정이 꽃피웠던 전성기가 아니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고 멸망으로 이어지는 시기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로마의 시작은 결코 위대하지

않았으나 천 년 로마제국이라는

위대한 업적과 로마 정신을 유산으로 남겼고, 후대인들은 그 영향 아래

살고 있습니다.


로마사를 파고들면 권력의 속성이 얼마나 음침한지도 파고들 수 있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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