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혐오하는 유토피아인

3-5,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by Plato Won


전쟁으로 얻을 영광은 없다

(1) 끊이지 않는 전쟁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영주들이 직접 군대를 거느렸는데,왕은 군사력을 제공받는 대가로

영주들에게 장원을 하사했습니다.


영주는 다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에게 영지 일부를 하사함으로써,

정해진 기간 동안 군사적 의무를 이행하게 했지요.


기사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는

부와 명예를 얻게 해 주는 ‘필수 스펙’이었습니다.


(2) 전쟁의 이면


하지만 평민들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명예’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도

왕이나 영주들이 징집 명령을 내리면

곧바로 전쟁터로 달려가야 했으니,

그저 성가신 의무였을 뿐이었지요.

토머스 모어가 주로 활동했던 16세기 전후로도 유럽 각국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경우, 프랑스와의 백년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가문이 왕좌를 두고 다툰 장미 전쟁이 또 일어납니다.


이 시기에 발생한 전쟁들은 대부분 종교적 갈등이나 왕과 성직자, 귀족들의 야망에서 비롯된 경우였습니다.


한마디로 지배층의 이권 다툼에 애꿎은 병사들만 희생시키고, 그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느라 민중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지요.


(3) 유토피아와 전쟁


이런 현실을 끊임없이 목격하며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인들을 전쟁을 경멸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묘사합니다.


지구상에서 ‘전쟁을 통해 얻을 영광은 없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지요.


자 그럼, 추상화를 함께 살펴볼까요?

(4) 추상화 이해하기

<그림 5-1 조각 그림>

유토피아인들이 절벽 위에 서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서 있어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아찔하고 가파른 절벽이 더 위험해 보입니다.


<그림 5-2 조각 그림>

절벽 아래에 유토피아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보입니다.

아마도 전쟁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전쟁을 혐오하는 유토피아인들은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전쟁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도 되도록 자기네 영토 바깥에서 용병이나 우방 국가의 군대로 전쟁을 수행하지요.


<그림 5-3 조각 그림>

유토피아인들이 절벽 끝에 황금을 잔뜩 쌓아 두고 절벽 아래 용병들에게 황금을 던집니다.


그들은 용병 고용에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어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림 5-4 조각 그림>

절벽이 화려한 빛으로 물들고,

그 와중에 유토피아인들까지 화사하게 빛이 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해를 입으면 즉시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합니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은

적국 군주와 맞바꾸자고 해도 거절할 만큼 최우선으로 여기지요.


<그림 5-5 조각 그림>

유토피아인들이 찬란한 빛을 뽐내는 금덩이들을 마구 뿌려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최고의 영광은 원하는 바를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얻는 것입니다.


적을 매수하거나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항복을 이끌어 내는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피를 흘리지 않고 얻는 무혈의 승리’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라는 뜻이지요.


<그림 5-6 조각 그림>


용병들로 가득하던 자리가

어느덧 사나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로 변했습니다.


목적 없이 출렁이는 바다는

물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전쟁터로 뛰어든 용병을 상징합니다.


세속적 가치만을 좇는 용병들에 비하면,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고 이성을 중시하는 유토피아인들이 보다 높은 자리에서 용병들 쪽을 내려다보는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전쟁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인명의 희생과

국력 소모를 가져오는 재앙입니다.


‘전쟁으로 얻을 영광은 없고,

언제나 국민의 안전이 제일‘이라는 유토피아인들의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Plato Won


○ 어제는 26년 동안 매월 이어져온 제 226기

지앤비 입문 교육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