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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법의 달인 장자,자유에 관한 유쾌한 상상과 풍자

1-5, 『장자』, 자유에 관한 유쾌한 상상과 풍자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



(1) 이야기는 힘이 세다


형체와 소리, 빛깔이 없고,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도’. 노자가 ‘도’의 의미를 짧고 함축적인 시의 형태로 노래했다면,

장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합니다.


『장자』의 「거협」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번 볼까요?


춘추 시대에 9,000명이나 되는 도둑 집단의 두목이 살았는데,그는 도둑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도척’이라 불렸습니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느냐는 부하의 질문에 도척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도가 어디엔들 없겠느냐.


훔치기 적당한 집을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고,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勇)이며, 가장 늦게 나오는 것은 ‘의(義)’,도둑질을 할지 말지 잘 판단하는 것은 ‘지(知)’이고,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인(仁)’이다.

모름지기 큰 도둑이 되려면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다소 딱딱한 교훈을 이야기 속에 녹여 내니, 독자로서는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독자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야기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통해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 『장자』는 가슴 깊이 느끼고 폭넓게 상상하는 가운데,우리를 자연스럽게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다.


(2) 화법의 달인이자 스토리텔링의 장인


‘이솝’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인 아이소포스.그는 말더듬이에 추한 외모를 가진 노예였지만, 박식하고 지혜로웠기에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고 우화 작가로도 이름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장자』는 ‘중국판 이솝 우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교훈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의 우화들로 가득합니다.


우화 형식으로 주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화법이 ‘우언(寓言)’인데,장자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부모보다는 다른 사람의 칭찬이 더 설득력 있는 것처럼,사물에 빗대어 도를 논하는 우언의 간접적인 방식은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여 줍니다.


장자는 유명 인사를 등장시키는 ‘중언(重言)’과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인 ‘치언(巵言)’도 즐겨 썼습니다.


중언의 목적은 존경받는 인물의 입을 빌려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전함으로써 쓸데없는 논쟁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언의 목적은 각자의 편견과 속단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있습니다.


“치언으로 늘어놓고, 중언으로 믿게 하며,

우언으로 그 의미를 넓힌다.”


『장자』의 「천하」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재치 있는 애드리브로 독자를 유혹하고,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여 사실을 증명하며, 빗대는 말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장자는 ‘화법의 달인’이자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모든 존재는 평등하고 자유롭다


『장자』의 주제는 ‘자연과 동화될 때

비로소 인간은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바탕에는 장자 사상의 핵심이자 독창적 사유인 ‘만물제동(萬物諸同)’‘소요유(逍遙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분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물제동, 즉 모든 사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물들은 비록 생김새가 제각각이라도 그 가치는 모두 같습니다.


선과 악, 미와 추, 옳고 그름 등,사물의 가치를 정하고 구분 지어 차별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의 주관에서 비롯된 것일 따름입니다.


이분법적 대립과 구분, 차별을 지양하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서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이것이 바로 편안하고 한가롭게 거닌다는 뜻의 ‘소요유’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차이를 인정하되,

서로의 장점을 조화시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려 한 노자와 달리,


자연과 하나 되는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고자 했던 장자.그는 하층민의 입장에서 지배 계급과 지식인들을 맹렬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수직적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예’ 사상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충과 효 등의 가치를 강요하고,소인과 군자라는 서열을 매겼던 유가를 집중 공격했지요.


인간 개개인의 가치는 지배자나 특정 사상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소외감과 빈곤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을 당시 민중에게 장자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그러면 장자의 문제의식이 책 속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추상화를 보면서 생각해 볼까요?


동굴인 듯, 우주인 듯 오묘한 공간.

회오리처럼 중심부로 접근하다 보면, 더없이 환한 빛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빛에서 진리, 행복 등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장자라면 ‘진정한 자유’를 먼저 떠올렸을 것입니다.


자유는 개개인이 자신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장자』는 나비 꿈 이야기에서 비롯된

‘장주지몽(莊周之夢)’이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하지요.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곤과 붕의 우화입니다.


책 주위를 에워싸고 빙빙 돌면서

차츰 바깥을 향해 나아가던 물고기의 형상은 어느덧 거대한 새가 되어 힘차게 비상합니다.


책 주위의 푸른색은 곤의 고향인 북쪽 바다를 상징하는 동시에,붕이 되어 처음 만난 높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때,비로소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붕이 다채로운 빛을 띠기 시작하는 가운데,

화면 전체가 연한 황토색으로 채워졌군요.

생명의 근원인 대지의 품속에서는

나비도, 물고기도, 새도 모두 평등해 보입니다.


장자는 도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세상만물은 하나라는 ‘만물제동’을 강조한 바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붕’은 진정한 도를 깨달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화면을 다시 물들이는 푸른색.

북쪽 바다를 떠나 창공으로 날아올랐던 붕이 목적지인 남쪽 바다에 다다랐나 봅니다.


그런가 하면 책은 나비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호접몽 우화가 『장자』 전체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을 암시하지요.


도의 세계에서는 인간과 자연, 꿈과 현실의 경계 역시 무의미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은 붕의 날갯짓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자유를 향한 절실한 몸부림입니다.


장자는 상상력의 스케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는 북쪽 바다에서 대기권보다 높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머나먼 남쪽 바다로 향하는 모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과 나비,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여행입니다.


진지한 철학책인 동시에 흥미로운 문학책인 『장자』는 그 고단하고 기나긴 여정에서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 줍니다.


“여보게들, 아등바등하지 말고 삶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바라보게나.


그러면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지금 모습이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


스스로를 옭아매는 삶의 조건들로부터 벗어나서 대붕처럼 저 멀리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 보세."


장자가 말하는 자유란 사유의 무경계성,

사유의 대범함 입니다.

그 대범함은 사유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사유가 눈치를 보는 순간,

인생은 눈칫밥을 먹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신세가 된다는 사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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