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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도덕경, 말할 수 없는 도를 말하다

2-1,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


노자의 도덕경 인문아트 추상화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는

그냥 동양철학이 아니다.


서양철학의 중요 개념인 형이상학,

인식론, 이분법 등을 '도''상대주의' 사상으로 간명하면서도 명료히 분석하고 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전반을 아우르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철학의 진수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깊숙이

사유하고 관조하면 어려웠던 서양철학

의 모호한 개념들이 가소로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제 그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 도, 새로운 질서의 출현


춘추 전국 시대 이전에는

천명사상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과 사회, 자연을 둘러싼 여러 현상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철기 문명의 본격적인 보급을 계기로 정치와 경제 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고, 새로운 지배 질서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사람들이 하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힘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천명사상을 극복하고 인간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나간 대표적인 철학자에는 공자와 노자가 있습니다.


공자는 인간 내면의 ‘인(仁)’을 바탕으로

‘예(禮)’를 통해 인간다움의 가치,

즉 도를 실현하려 했고,


노자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질서에서

영원불변의 진리인 ‘도’를 찾았습니다.


사회의 새로운 질서로 떠오른 ‘도’는

덕과 함께 여러 사상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고,‘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는 의미를 넘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만물의 근원이자 운행 법칙’이라는 다양한 의미가 덧붙게 됩니다.


(2) 도와 이름 그리고 언어


『도덕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인

‘도’는 노자 사상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자가 『도덕경』 1장의 서두에서부터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이라고

단언한 이유는 언어의 한계 때문입니다.


노자는 도를 언어라는 좁은 틀에 가둘 경우,

‘도’라는 말 자체에만 얽매이게 되는 현상을 경계했습니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 수단이자

서로 약속된 기호 체계입니다.


‘이름’은 다른 대상과의 구분을 위해

임의로 붙여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일부를 특정 내용 안에 가두어 버릴 수 있습니다.


“도는 인(仁)이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인이 도가 아닐 가능성, 다른 것이 도일 가능성은 모두 배제되고 마는 것이지요.


(3) 이름을 보는 두 가지 시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시 「꽃」에서 보듯,

인간이 대상과의 관계를 인식하려면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명명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름을 뜻하는 한자 ‘명(名)’의 생김새를 보면, ‘저녁 석(夕)’ 자 아래에 ‘입 구(口)’ 자가 붙어 있습니다.


먼 옛날,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어 이름을 붙여 부른 것이 이 글자의 유래라고 합니다.


공자는 이름과 사물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정명(正名) 사상이라 부릅니다.


정명은 바른 이름이란 뜻으로, ‘명분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라는 말에서 보듯, 공자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주어진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일차적 과제라 보았습니다.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가는

언어를 통한 배움, 즉 학문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지요.


이에 비해 이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도가의 주장은 ‘무명론(無名論)’이라 불립니다.


모든 사물은 유한하므로, 대상이 사라지면 그 이름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름, 즉 언어에 집착하지 않으니,

도가의 배움은 학문과는 다른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이제 추상화를 통해,

노자가 말하는 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경계선에 살짝 걸쳐 있으면서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달. 달의 속성으로부터 우리는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는 ‘도’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낮의 광채 속에서는 다소 흐릿해 보이던 달이 밤이 되자 자연스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C자 모양의 달.

알파벳 C는 천지만물을 만든 창조자, 크리에이터(Creator)의 머리글자로

노자의 ‘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낮 동안 태양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달의 모습에서는 물러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는 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형체가 없기에 위와 아래, 앞과 뒤를 분간할 수 없는 도처럼, 달의 위아래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퍼져 나갑니다.


달은 낮과 밤, 흑과 백으로 나뉜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 주기에 우리를 참된 길,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는 ‘도’와 닮았습니다.


어느새 오묘한 기운이 달 주위로 사방팔방 뻗어나갑니다.


우주를 뒤덮은 이 기운은 때로는 만개한 꽃인 듯, 때로는 세찬 파도인 듯, 신비롭고 황홀할 따름입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이 바로 ‘도’입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져도 영원히 남아 있는 무엇, 천지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무엇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노자는 이를 ‘크다’라고밖에 형용할 수 없다면서, 마지못해 ‘도’라고 부르고 있지요.


노자의 도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명(無名)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늘 그러한 도’인 상도(常道)’이며 '늘 그러한 이름’인 상명(常名)입니다.


노자는 말할 수도, 이름 붙일 수도

없다는 그 도를 이렇게 말고 있다.


"

황홀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만물의 근원이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억지로 말하라면 도라 불러본다.

굳이 형용하라면 '크다'라고 하겠다.

"


도가 깃든 단풍은 울긋불긋하지 않고

그냥 딱 붉은색이다.


영혼이 노자의 '도'로 붉게 물들면

비로소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Plato Won


전북 아트페스타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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