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빌려 먹을 수 있어도 진리는 빌려 먹을 수 없다. 오직 받아들인 지식을 관점을 달라하여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할 때 진리를 먹을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돌면 로마제국으로 향할까?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고 읽으며 지혜를 구했다. 마치 뫼비우스 띠를 돌고 돌 듯
1. 추상화 읽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돌면 천 년 로마제국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만날 수 있을까요?
추상화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배경을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군주론은 15세기, 약소국가로 전락한 조국 피렌체에서 로마제국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강한 군주가 출현하여, 5개의 공화국으로 분열된 이탈리아 반도를통일하고,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같은 강대국들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다시 한번 더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욕망에서
저술된 책입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뫼비우스의 띠 위에 가면을 쓰고
등에 칼을 찬 군주가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길을 나서는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의 특징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리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입니다. 한 바퀴 돌면 처음 출발한 반대편
면의 제자리에 위치하나, 다시 더 한 바퀴를 돌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조국 피렌체 공화국은 뫼비우스 띠의
안쪽 면입니다. 바깥 면은 나머지 4개의공화국입니다.
뫼비우스의 띠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듯,
원래이들 5개 공화국은 옛 로마제국의
한 민족, 한 국가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추상화에서처럼 강한 군주가 나타나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기를 바라면서 군주론을
집필한 것입니다.
그런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저 인자하고
도덕적인 성품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니, 가면을 쓰고 때로는 사자처럼, 때로는 여우처럼행동하는 군주만이
그 대업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업은 말로만으로는 안되고강한 군대가
필요합니다. 군주에게 강한 군대가 있어야 함을
나타내기 위해서군주의 등 뒤에 칼을 찬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구하고 돌고 돌아도 현실은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였던 것입니다.
2. 조각그림 읽기
그림 1. 뫼비우스의 띠 위에 등에 칼을 찬 스케치 그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과거 로마제국의 번영을 한마디로 요약한 문장입니다. 일찍이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되풀이해 읽으면서 로마제국의 영광에 심취했던 마키아벨리는
동네북 신세가 되어버린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생각을 바로 <군주론>에 담았습니다.
약소국가로 전략한 조국 피렌체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함
으로써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지요.
조각그림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염원을 뫼비우스의 띠 위에 카이사르 같은 군주를 그려서 표현하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읽으며 인문고전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를비슷한 이름의 뫼비우스 띠로
대비시켜 표현하였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의 특징이 안과 밖의 구분이 없듯, 피렌체를 비롯한 나머지 4개의 공화국들도 마치 안과 밖처럼 경계선을 가지고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며
전쟁 상태에 있으나, 원래는 옛 로마제국의 한 몸, 한 국가였음을 뫼비우스의 띠가 지닌
안과 밖의구분이 없는 성질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염원은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아무리 돌고 돌아도 옛 로마제국의 영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제자리 신세입니다. 이를 돌고 돌면 제자리에
머무르는 뫼비우스의 띠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들은 수많은 다른 결과들을 잉태할 수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의 원리를 통해 수많은 특허가 만들어져 세상에 도움을 주었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군주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없는 백성들에게도 삶의 지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뫼비우스의 띠를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그림 2. 스케치 그림 중 군주 부분만 채색된 그림
분열과 대립 그리고 부패로 얼룩진 이탈리아 반도5개
국가 중 중부의 피렌체 공화국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의 어린 시절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7세 때인 1478년, 피치가의 음모로 벌어진 메디치 가문 지도자 암살사건과 이로 인한 로마 교황청과 나폴리 연합군과의 침략전쟁을 경험하면서어린 시절부터
음모와 전쟁이라는 냉혹한 정치현실을 보았습니다.
1494년 프랑스 군대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격하면서 거쳐 간 피렌체, 그곳에서 살았던 25세 청년 마키아벨리가 겪었을 절망감은
어떠했을까요?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침공으로 로마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 58세 마키아벨리가 느꼈을 낭패감은 또 어떠했을까요?
조각그림 2는 여러 차례의 주변 국가 군주들의 침략 야욕으로 절망감과 낭패감을 겪었던 그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위에 군주는 마키아벨리가 꿈꾸었던
강한 군주인 카이사르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피렌체와 이탈리아 반도를 침략해서 빼앗으려는 주변 국가의 군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당시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16세기 피렌체의
상황이 준 전시상태이자 전쟁이 빈번히 일어난 상황
임을 표현하기 위하여 뫼비우스 띠에 칼을 찬 군주를 채색해서 표현하였습니다.
회색빛으로 어두운 표정을 하고 가면을 쓴 사람은
또한 여러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마키아벨리가 맛보았을 낭패감과 두려움과 절박함, 트라우마를 동시에 표현하였습니다.
그림 3. 전체 그림에 채색된 추상화
1498년 새로운 피렌체 공화국 정부가 탄생하자 29세의 마키아벨리는 내정 및 군사를 담당하는 제2 서기국의 서기장으로 근무하며 14년 동안 조국 피렌체 공화국을 위해 헌신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주요 외교 업무를 도맡아 로마 교황 국
체사레 보르자, 전사 교황 율리우스 2세, 프랑스 루이 12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1세 등 당시의 절대군주를 만나 관찰하면서 그들의 행동과 성품을 자세히 기록하고
경험한 내용을 군주론에 그대로 녹여 담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강한 군주가 나타나 조국 피렌체가 로마로 통하는 길을 걸으며,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길 바랐을 겁니다.
군주론은 과거 로마제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해법
또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영웅들의 활약상에서
찾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원했던 강한 군주는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돌고 돌면(리비우스의 로마사를
거듭 반복해서 읽고 읽으면) 15세기 피렌체 공화국에서 나타날까요?
추상화는 뫼비우스의 띠의 색깔을 붉은색으로 표현
하여 마키아벨리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표현하였습니다. 동시에 마키아벨리의 간절한 염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