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수학화, 수학 지각화를 통해 수학은 철학이 되다

수학은 철학이고 철학은 수학이다. 고로 수학자는 철학자다.

by Plato Won
대장간에서 망치의 무게비율을 측정하고 있는 피타고라스, 대장간에서 발견한 이 음의 비율 발견이 인간의 과학에 가장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하였다.

數는 또 하나의 강력하고 매혹적인
생각의 도구다.

만일 인류가 數라는 생각의 도구를 개발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학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극히 제한되었을 것이며,
현대 문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數는 문장, logos와 함께 문명을
떠받쳐 온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다.

"수학은 인간이 얻을 수 있누 그 어떤
도구보다도 더 강력한 지적 도구"라는
데카르트의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런 수학은 인류 보편적인 언어다.
한국 수학, 미국 수학, 인도 수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에 피타고라스라는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수만 년 동안에는
數가 엄밀한 의미에서 '생활의 도구'였을 뿐
'생각의 도구'는 아니었다.

피타고라스 이전의 數는 대부분 토지를
측량하거나 세금 또는 이자 등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산술 표이었다. 이때까지 數는 실용적인
용도에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모스 사람 피타고라스는 달랐다.
그는 수(arithmos)가 우주를 구성하는
보편적 특성 내지 원리, 곧 아르케라고
생각했다.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원형(archetype)
으로서의 숫자"는 그가 즐겨 사용하던 말
가운데 하나였다.

이 말은 數는 단순히 물질적 이득을 계산하는
생활의 도구가 아니고, 자연의 원리를 탐구
하는 생각의 도구라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그 학파들은
모든 사물들이 수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보았고, 온 우주가 조화이자 數라고 믿었다.

이것은 우리가 數를 연구하면 우주 만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자연의
모든 원리가 數로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
이었다.

한마디로 "자연의 수학화"라 표현할 수 있다.
자연의 수학화! 이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스타일
로 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불확정성 원리>로 1930년 노벨상을 받은
양자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자연을 수학화 한다는 것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무수하고 다양한 사건들을 1개의 등식에서
도출되는 무수한 해답들을 통해 수학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피타고라스가 이런 기발한
사유 스타일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현대 문명과 생활 방식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20세기 지성,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트 러셀은 피타고라스를 두고
"사상의 영역에서 그처럼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평가
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아버지는 에게해와 지중해 전역에 거래선을 가진 부유한 페니키아 상인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체육, 미술을 포함한
최상의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를 따라 이름난
많은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다.

1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밀레토스로
가서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아르케에 대해
공부하며 2,500년 동안 서양 사상의 골격을
이루는 두 가지의 사유를 잉태하게 된다.

하나는, 자연에는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파악되는 '현상'과 정신에 의해 파악되는
'본질'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플라톤은 이들을 각각 지시적 영역과
가지적 영역으로 이름을 지어 구분하였고
이데아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 이론으로
발전시켰고, 그 후 이 두 사상은
서양 사상을 지배했다.

피타고라스는 밀레토스의 자연 철학자들로
부터 이 두 가지의 사유를 아르케라는 개념으로
물려받아 후세에 전했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왜 그 많은 것들 가운데
하필 數를 아르케라고 생각하고
"모든 사물들이 수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보았고, 수들이 자연 전체에서 으뜸가는
원리"라고 규정하였을까?

數가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보편적
성질 내지 원리, 곧 아르케라는 피타고라스의
생각은 대장간의 망치 소리에 의문을 던진
피타고라스의 사유하고 질문하는 습관에서
나왔다.

어느 날 피타고라스가 길을 가다 대장간의
망치로 쇳덩이를 두들기는 소리가 마치
하나의 음악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그가 대장간으로 들어가 주의 깊게 살펴
보았더니, 그 이유는 망치의 재질이나 모양
때문이 아니라, 망치의 무게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음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도 대장간의 망치들의 무게는
6파운드, 8파운드, 9파운드, 12파운드였다.

피타고라스에 의해 시작되어 이후 발달한
화성학(harmonics)에 의하면,
두 망치의 무게 비율이 1:2면 한 옥타브 차이가
있는 8도 음정을 내고, 2:3이면 5도 음정을,
3:4면 4도 음정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만일 한 망치가 '도'라는 음을 냈다면,
나머지 망치들은 '파', '솔'그리고 '높은 도'라는
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바로 이것이 망치 소리가
조화롭게 들린 원인이라고 가정했다.

그가 이 생각을 한 순간, 그는 물리학 현상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한, 자연을
수학화한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위대한 발견으로
"이 발견은 인간의 과학에 가장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해주었다."라고 하이젠베르크는
높이 평가하였다.

"수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수학은
우리 몸과 두뇌와 나날이 살아가는
세상 경험 속에서 나왔다
수학의 초상화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라고 물리학자 레이코프가 말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가 數 또는 수들이라는 표현에
의하면, 그 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 곧
1,2,3,4와 같은 상징적 기호(symbol)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시했다.

테트락튀스, 1:2/2:3/3:4 비율, 숫자 1,2,3,4 네 숫자가 모여, 평소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질서를 상징한다고 여기는 테트락튀스를 대장간 망치소리가 구현한 것을 발견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숫자 1은 점이고 알파, 2는 선이며 베타,
3은 면이고 감마, 4는 입체고 델타다.
그리고 이 네 숫자가 모여 테트락튀스
(tetraktys)를 구성하고 테트락튀스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나타나는
수학적 비율 1:2,2:3,3:4는 모두 조화로운
음정들을 만들어낸다.

피타고라스는 음의 조화를 만드는 수학적
비례를 우주 만물의 질서에 관한 보편적 법칙
으로 확장시켰다.

피타고라스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질서를
근거로 우주를 코스모스(kosmos)라고
부른 최초의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는 수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하고 아름다운 조화(harmonia)
그 자체이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이
질서와 조화의 지배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인체의 조화가 깨지면 질병이 생기고,
심리적 조화가 깨지면 마음이 병든다.

구성원들 사이의 조화가 흐트러지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연의 조화가 허물어지면 자연이
망가진다.

"조화는 수많은 것들이 혼합된 것 속의
통일이며, 다양한 뜻을 지닌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미의 결합이다."
여기에서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들을 이끌어냈다.

피타고라스 학파들의 개인생활에서는 금욕에
가까운 검소함과 신중함을 견지해야 하고,
공동생활에서는 타인에 대한 존중, 남녀평등,
약자에 배한 배려, 생명과 자연보호 등을
엄수해야 했다.

그래야만 '바르게 질서 잡힌 삶',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삶'이 된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에게는 數에 대한 탐구는 이처럼
'질서와 조화에 관한 학문'이었고,
물리학적, 미학적 의미뿐 아니라, 의학적, 윤리적,
형이상학적 의미까지 갖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수학, 과학
그리고 예술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된 하나라고
보았고, 그것을 탐구하는 일을 지혜(sopia)에
대한 사랑(philos), 곧 철학이라고 했다.

Philosophia도 피타고라스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때 철학은 다름 아닌 질서와 조화
에 대한 사랑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數를 테트락튀스처럼
간단한 방법으로 시각화(visualization)
함으로써 산술과 기하학을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

또 수적 비율과 음정의 관계를 파악하여
수를 청각화(auralization)함으로써
산술과 물리학을 연결시킬 길을 열었다.

'수학의 지각화'또는 이미지화(imaging)!
이 발상으로부터 자연의 수학화라는 사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자연의 수학화와 수학의 지각 화가
피타고라스로부터 비롯된 피타고라스 스타일의
핵심이다.

나아가 數를 질서와 조화의 원리로
파악함으로써, 수학을 오늘날과 같은 분과 학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학문, 예술들과 연결하여
하나의 통합 학문으로 만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자연에 대한 엄격한 윤리의식이 여기서 나왔다.

피타고라스는 數에 의미를 부여해 수학을
'철학화'했다.
그에게 수학은 철학이고 철학은 곧 수학인
것이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숫자 1, 다섯 개를
가지고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숫자 1, 다섯 개를 연산이라는 지식을
쌓아서 최대한 큰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공이다.

숫자 1을 다섯 개 받고 태어났으니 5를
만들면 본전인 것이고 5보다 더 큰 숫자는
일생을 노력해서 쌓은 부가가치인 것이다.

수학이라는 지식을 계산하는 학문으로만
접근했던 학생은 자기가 그동안 배웠던
연산법칙을 총동원해서 최대한의 숫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덧셈도 해보고 곱셈, 나눗셈도 해 보기를
한참 한다.

어떤 학생은 착실히 더해서 원래 가진
수만큼인 5를 만들고 만족하며 산다.

어떤 학생은 더하기로는 만족을 못해 더하기
보다 더 어려운 연산법칙인 곱하기를 시도하다,
그만 1 ×1 ×1 ×1 ×1=1을 만들어 내고 신세를
한탄한다.

내가 덧셈하는 사람보다 지식이
더 많은 데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또 어떤 학생은 더 어려운 연산법칙인
나누기로 1을 나누었더니 역시 1이라는
답을 얻었고 더 잘해 볼 거라고 빼기를
시도했던 학생은 1-1-1-1-1= -3, 마이너스
3이라는 인생 성적표를 받아 든다.

덧셈만 할 줄 아는 학생보다 더 어려운
연산법칙을 공부했던 학생들이 더 안 좋은
결과를 도출하고 신세 한탄을 한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교 가서 강의 듣고 문제 풀고 시험 쳐서
대학 가는 수동적인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의 모습이다.

수학을 계산하는 학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공부한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공부한 사람들은 기껏 성공해 봐야
괄호 묶음과 연산법칙을 잘 활용해서 (1+1) ×(1+1+1),6을 만들어 내고 당초 가진
5에서 부가가치 1을 더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지식이 있는
전문가 집단이라 부르고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우리 학부모들이 이런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착한 모범생으로 우리 자녀들을 키우고 싶은 것이

대한민국 교육이다.

수학이 철학이 되고 생각열기의 도구가 된
사람들에게 숫자 1 다섯 개 1,1,1,1,1
을 쥐어주면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해 본다.

아니 왜 반드시 연산법칙으로 더하고 곱하기를
해야만 하나, 그냥 연산법칙 하지 말고 이어 붙이면
11,111, '만 천백십일'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렇게 수학이 계산하는 학문이 아닌
사유하고 질문하는 철학으로 생각열기의
도구가 되면 가진 숫자 5는 만 천백십일이라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열심히 수학 공부해서 연산법칙에 매몰되어
6을 만드는 아이를 만들게 아니라 만 천백십일
이라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아이를 만들어
보자.

수학은 계산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유하고 질문하는 생각열기 학문으로

접근할 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열린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두 가지 세상과 마주한다.

하나는 인간의 손 때가 묻지 않은 자면이고

하나는 인간의 손 때가 묻은 문명이다.

그 자연은 아름다운 수학으로 이해하고

그 문명은 사유하고 질문하는 철학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 感이 온다.


생각이 열리면 세상이 열린다.


Plato Won

산책하면서 사유하고 질문하기를 습관화해 보자.
사유하고 질문하는 퍼트^^
가을은 사유하고 질문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진 S.Y.Kim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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