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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Jan 01. 2020

9. 초승달 같은 작은 섬나라,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추상 읽기

김유진 作,초승달 같은 섬나라,유토피아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섬나라.

아일랜드를 감싸듯 둘러싼 초승달 모양의 섬,

템즈 강을 묘사해 안니드루스 강,

런던 브릿지를 묘사한 화려한 아치형의 다리 등은

영국의 지리적 환경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16세기 영국의 처참한 정치환경이 유토피아라는

이상적인 섬나라로 바뀌어야 한다는 희망을 담고

유토피아의 지리적 환경 구성을 영국의 지리적 환경과

동일하게 구성하였던 것이다.


추상 스케치 그림 1은

토마스 모어가 바다에 돌을 던져 잔파도가 이는 듯한

스케치 그림으로 초승달 같은 작은 섬나라, 유토피아

를 표현하였다.


돌은 모어가 헨리 8세 치하의 영국 정치현실에

침묵으로  저항하는 의지를 표현하였고,

그 의지가 초승달 모양의  잔파도를 일으켜

유토피아라는 공상소설 속 섬나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리적 특성은 영국과 유토피아가 동일한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정치적 설정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절대왕정이었던 영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민주주의 국가로 유토피아의 정치 환경

을 구성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선거로

선출한다. 그 대표들은 국민의 의지에 반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으며 모든 물건들은 전 국민이 함께

소유하는 공유재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유재산 제도를 시행한다고 국민들이 게으르거나

일을 기피하지도 않는다. 단 6시간의 노동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풍족하게 생활한다. 인간의 창의성

이나 자발성을 최대한 존중할 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

사상과 신념의 자유, 사회적 복지와 의료 복지가

완전하게 실현되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당시

영국 국민들의 염원이자 희망사항이었는지도 모른다.


추상 그림 2는

완벽한 균형을 갖춘 원으로 라파엘이

여행했던 초승달 같은 작은 섬나라, 유토피아를

표현하고 있다. 정 중앙의 흰색의 세 띠들은

투표용지로 투표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뜻하고 아래 세 띠의 두 조합은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만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취미나 교육 여가시간을 즐기는

유토피아의 노동환경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매 2년마다 도시와 농촌을 돌아가며

생환하고 자급자족의 생활기반을 갖추기 위해

모든 국민은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을 습득하게 한다.

민주주의  사회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40명씩

거주하는 농촌 주택에 노예들을 고정 배치시키고

있는데 이는 당시 귀족사회였던 영국의 뿌리 깊은

국민성에 기인한 것이다.


유토피아는 지방자치 제도가 잘 시행되는 사회로

이들 지도자들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관리들이다.

공공의 문제들은 공식적인 회의체 구조가 아닌 곳에서

토론을 하면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관리들이 공모하여

시민들의 희망을 무시하거나 국가체제를 변경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회의가 회부된 안건은 당일 절대

토론을 못하게 규정하여 숙려 기간을 두고 있다.

이는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건 제출자도 신중하도록 한 장치이다.


모어가 제시한 유토피아는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로

구성된 공동체 국가로 오늘날 거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실현되기에는 분명 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잘 발달된 영국의 모범적인

의회제도나 사회복지 제도는 이 시기부터

태동되었는지도 모른다.


추상 그림 3은

모어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완벽한 원으로 표현하였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곳곳에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유로 가득 차 있다. 헨리 8세 치하의 부도덕,

부조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가공의 인물,

라파얼 히슬로우 다에우스는 무의미한 제조자라는

의미이고, 가공의 섬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돌을 던져 잔파도를 만드는 추상 그림은

무의미한 제조자 라파엘 히드로 다에우스가 그리는

유토피아를 은유하고, 던진 돌이 잔파도를 일으키다

바닷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은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향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 적 돌을 던져 잔파도가 이는

그때만큼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꿈을 꾸었다.

모어의 유토피아도 그 책을 집필할 동안만큼은

이상적인 영국의 유토피아가 실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Plato Won


● 어제 대구 동부본부에서 전국 본부장 회의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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