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너무 추웠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이번 겨울은 유독 추운 겨울이었다. 오른 난방비에 대응하느라 보일러 켜는 횟수를 가능한 한 줄이려고 했지만, 그 노력을 비웃기나 하듯, 가스 요금은 더 나왔다. 그래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나와서 다행이었다. 이렇게나 추운 날씨에 따뜻한 소식을 전해도 추위가 가실까 말까 한데, 12월에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마음마저 얼어붙어버렸다. 그때부터 아직까지 겨울인 것 같다. 몸도 마음도 겨울이다.
그렇지만 자연은 인간사와 상관없이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한다. 너무 추워서 봄이 올까 했는데, 나무들은 봄눈을 틔우며 봄을 준비하고, 초록색 잎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피는 꽃인 매화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얼마 전 눈이 내린 날에도 매화꽃은 눈 속에서 제 빛깔을 고고하게 뽐냈다. 매화나무 다음 주자인 벚나무는 꽃을 틔울 준비에 여념이 없다. 겨우내 짙은 갈색이던 나무에 어느샌가부터 분홍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누가 나무에 분홍색 물감을 스프레이로 뿌려 공기 중에 퍼진 순간을 촬영한 것을 보는 기분이다. 이제 곧 분홍꽃을 틔울 것이다. 봄을 준비하는 식물들이 있어 겨울이 한 움큼 덜어진다.
그래도 봄이 온 것을 직접적으로 눈치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식탁 위일 것 같다. 봄이 되면 우리 집 식탁엔 미나리가 올라온다. 미나리를 보며 봄이 왔음을 인지한다. 사실 미나리는 2월이 되면 나오기 때문에, 봄이 오겠구나 짐작하는 게 맞겠다. 식탁 위에 오른 미나리를 보며 내가 아무리 겨울이라고 우긴다고 한 들, 봄은 이렇게 내게 오는구나 싶다. 매년 봄 미나리를 먹을 수 있는 건 미나리 농사를 짓는 친척 덕분이다. 사실 친인척의 농사가 아니라면 미나리를 그렇게 자주 먹진 않을 것 같긴 하다. 친인척 찬스 덕분에 매년 남부럽지 않게 미나리를 먹는 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나리를 반찬으로만 접했는데, 작년부터는 미나리를 식재료로 만나고 있다. 분가를 하면서 엄마가 해주는 반찬이 아니라 내가 해 먹어야 하는 반찬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미나리를 집에서 먹진 않았는데, 작년부터는 미나리를 식재료로 받아서 반찬을 만들어 먹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지금 먹는 음식을 가까운 미래에 못 먹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기후의 변화도 문제이지만, 농사 지을 노동력 부족도 문제라, 지금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가까운 미래에 생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제철음식을 챙겨 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봄에는 이 미나리는 챙겨 먹는다.(봄에 또 하나 챙겨 먹는 음식이 있다면 딸기. 딸기도 빼놓을 수 없는 봄의 과일이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올해도 어김없이 미나리 1kg 한 봉지를 산지직송으로 배송받았다. 1kg은 생각보다 많다. 이걸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가장 대중적으로 먹는 방법이 고기를 구워서 쌈채소 대신 미나리로 쌈을 싸 먹거나 고기와 같이 구워서 호로록 먹는 것이다. 이건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굳이 집에서까지 고기를 먹고 싶진 않으니까 이 방법은 다음에. 사실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해먹은 조리법은 생조림이다. 간장과 식초와 매실액기스, 고춧가루 등등을 적절히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고 그 양념장을 먹기 좋게 자른 미나리에 버무린다. 그럼 미나리 생조림 완성. 그냥 밥과 먹어도 좋고 밥을 비벼서 먹어도 좋다. 이렇게 먹으면 밥 두 공기는 뚝딱이다.
몇 끼를 이렇게 먹어도 미나리가 많이 남는다. 당일 수확한 미나리를 받아온 덕에 일주일 정도는 물러지는 것에 걱정이 없다. 아직 싱싱하니까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지난번 남해 여행에서 사 온 유자청을 주재료로 한 소스를 미나리에 얹어 먹거나, 올리브유를 뿌려서 먹는 것도 맛있다. 타이밍이 좋게도, 2월쯤 좋은 올리브유를 구입했는데 그 올리브유가 논필터 올리브유라서 약간은 떫은맛이 있는데, 여기에 후추와 소금을 조금 섞어 미나리에 뿌려먹으니 입안에 봄이 찾아온 느낌이다. 너무 맛있어서 몇 번을 점심 도시락으로 싸왔다.
이렇게 먹어도 미나리가 조금 남았다. 이번엔 미나리 찌짐(경상도에선 전이나 부침개라는 말보다는 찌짐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또 찌짐이라는 말이 더 말맛이 살아서 찌짐이라고 쓰겠다). 미나리를 쫑쫑쫑 썰어서 그 위에 부침가루, 튀김가루, 전분가루를 넣고 물을 약간 부어서 반죽을 만들어 구워내면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찌짐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이면 너무나 좋겠지만, 당분간은 금주령이니까 커피에다가 미나리 찌짐을 먹는다.
미나리 요리를 먹으면서 봄에 날씨가 좋아지면 어딜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데, 이번 봄은 오려면 아직 먼 것 같다. 미나리 찌짐을 먹던 날도 집회에 갔고, 미나리 샐러드를 먹던 날도 급하게 집회에 참여했다. 미나리로도 방어가 안 되는 겨울이다. 이미 봄이 왔는데 아직 봄이 아니다. 봄이 얼른 와서 편한 마음으로 미나리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날엔 막걸리도 한 잔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