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와 남는 자
요즘 전에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있다. 매일의 루틴 80% 이상을 수행하고 있다. 나의 일상은 아주 평온하다. 그런데 머릿속은 시끄럽다. 왜냐하면 떠나는 자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떠남과 헤어짐은 당연한 일이고, 여태 살아오면서 나도 여러 곳을 떠나왔다. 그렇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떠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있는 곳에서 누군가가 금방 떠난다는 것은 내가 있는 곳이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라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도 내가 있는 곳에 대한 회의감을 품었을 때, 떠나는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라면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 그런 신호를 받았다. 같이 일하는 강사님들, 그것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 강사님들은 내가 보기에도 유능한 점이 있었고, 그래서 배우고 싶은 점이 있었던 강사여서 생각이 많아졌다. 강사님들이 떠난다고 하니 문득 예전 내가 떠나온 자리들이 생각난다.
어릴 적 나는 회사에 취직하면 3년은 버텨봐야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는 객관적으로 봤을 땐 그다지 좋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재밌게 다녔다. 그래서 3년은 채워보자고 생각했다. 일은 정말 정말 많았는데 급여는 적었고, 복지도 없었다. 일 말고도 사건사고가 많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가족회사라는 것이다. 사장과 이사는 부부였는데, 이 관계에서 오는 이벤트가 적지 않았다. 가 족 같은 회사. 나 말고도 다른 직원들도 있었지만, 자주 바뀌었다. 그런 회사에 나 혼자만 계속해서 남아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그런데 같이 일했던 직원들 중엔 유능하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없었다. 기초적인 문서툴도 다루지 못하는 직원, 술만 마시면 안 나오는 직원도 있었다. 또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직원들이 회사를 스쳐 지나갈 때면 내가 유능해서 여기에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회사를 키우고 성장시킬 사람은 나밖에 없지! 그런데 내가 친해지고 싶은 유능한 직원들이 스쳐 지나가면 내가 굽은 나무라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인가 하는 자존감 떨어지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는 것인가.. 나는 내가 더 나은 곳에 쓰일 수 있는 재목이 되고 싶었다. 굽은 나무는 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지금 굽어있을지라도 내 윗둥이는 바르게 자라기 원했고, 그래서 그곳을 떠나왔다.
그러고 몇 년 후 취직한 또 어느 회사. 첫 출근날, 이곳에서 나의 능력을 발휘하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면 좋겠다 생각하며 출근했다. 안타깝게도 딱 1주일을 일하고서 오래 일할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고 봤더니 그 회사도 1년을 넘기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만 지나면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래서 사장이 걸핏하면 4대 보험도 가입 안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4대 보험 가입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20대 사회 초년생만 고용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 회사에 딱 한 명, 대리만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었다. 굽은 나무. 정확히는 선산을 지키라고 일부러 구부러뜨린 나무였다.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다른 더 좋은 곳에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현재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대리처럼 굽은 나무가 되지 않으리, 하며 퇴사를 하겠다고 하니 굉장히 씁쓸해했다. 물론 내가 대놓고 ‘당신처럼 굽은 나무는 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내가 회사를 그만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리가 씁쓸해했던 이유는 나처럼 회사를 스쳐가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했다. 또 금방 나갈 사람들이라 굳이 정을 주지 않는데, 그나마 나와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새로운 직원이 올 것을 생각하니 약간은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것도 우울하다고 했다. 떠나는 자를 보는 남은 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내가 첫 직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대리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떠나올 때 회사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나왔고, 그래서 대리가 그 파문에 동요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후 남았는지 떠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과거의 떠난 자리들이 생각나는 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떠나는 게 약간은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굽은 나무가 되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더 넓고 먼 곳으로 못 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고요한 일상이지만 머릿속만은 너무너무 시끄럽다.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팽창하고. 그 많은 생각들 중 가장 자주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나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정확히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롯이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더 성장하고 싶다’는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인데, 지금의 나는 배움과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더는 성장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여기에 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들. 내가 능력이 있어야 한 계단 뛰어오를 수 있을 텐데. 한 계단 뛰어오르려면 연습을 하고 연마를 해야 뛰어오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 뜀뛰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나는 남는 자가 될까, 떠나는 자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