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그리며

실패

 그림의 실패를 깨달을 때가 있다. 스케치 단계에서, 첫 색을 올리고서, 세밀한 묘사를 하다가, 완성 직전에. 이렇게 단계별로 작업이 끝을 향해갈 때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실패의 판단은 창작자 스스로가 하는데 이 말은 곧 다른 사람의 눈과 작업의 완성으로부터 오는 실패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며칠을 꼬박 그린 그림의 실패를 인정하기까지 괴로웠던 시간이 있었다. 어찌 됐건 작품의 완성은 쏟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두려워서 완성을 미루다가 더 큰 낭패를 봤다. 완성의 실패가 자신의 실패, 더 나아가 자기 존재의 실패로 확산되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그리는 것이 더 이상 즐겁거나 기쁘지 않고 무서웠다. 살면서 그리는 걸 무서워했던 적이 있었나?

 바다와 가깝게 지낸 적이 없음에도 마음이 어려울 때는 바다를 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날카로운 생각들이 휘발되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같은, 머리를 써야 하는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소중한 무언가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가. 집으로 갈 시간이 되면 단단한 다짐과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그리면 된다. 실패를 경험한 어느 날 적었던 일기 속 문장처럼 다시 하고 다시 하고 다시 하면 된다.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고, 지독하게 나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도 마음을 담은 노래가 사람들의 온기를 타고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