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사이에 두고
조용한 9월. 새벽 사이 부지런히 내린 비로 땅은 흠뻑 젖어있고 백색 하늘에는 연한 먹색 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이맘때쯤 내리는 비는 아주 가볍고 맑은 공기가 농축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개운하다. 마치 스스로가 갈증을 느끼는 식물이 된 것 같다. 비가 내리는 아침이, 흐린 하늘이 반갑다.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과 산도 백색 빛을 머금고 있다. 서로의 경계는 흐릿하고 투명하다. 색이 빠지니 멀리 있는 풍경과 가까이 있는 식물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인다.
강조, 대비, 대조, 비교는 그림 속에서도 자주 보인다. 군청색으로 칠한 배경에 빛나는 노란색 달을 그린 그림이나 초록으로 무성한 덩굴식물 사이에 아무런 규칙도 없이 열리는 것 같은 새빨간 열매를 그린 그림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것들은 유독 그림 속에서 더 대비되어 보여서 완성된 그림 앞에 서면 비현실을 그린 것 같다. 그러나 모두 우리 주위에서,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보인다. 자연과 닮은 것 - 종이에 번지는 물감, 의도치 않게 발견한 아름다운 색 조합, 번뜩이는 아이디어, 깊은 그림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무언가 - 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영영 만날 수 없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과 기氣 를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데에 쓴다. 그러면 보이지 않았던 색을 볼 수 있거나 들리지 않았던 미세한 음을 들을 수 있다. 어둠이나 구름으로부터 가려져 생략된 풍경과 동시에 강조되는 부분을 포착할 수 있다. 그렇게 새롭게 발견함으로부터 가득 채워진 마음을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그 대상에는 어떤 힘이 실리는데 나는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무언가를 꼭 끌어안는 행위를 사랑한다. 팔로 감싸고 힘을 주어 심장과 닿게 하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가까이 끌어당김으로써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진심, 진실, 정성, 진정 같은 무거운 단어들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기억하고 믿는다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다. 그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끌어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