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미술관 안 선생님들 작품을 보다가 내 그림을 보면 그렇게 얇아 보일 수가 없다. 몇 시간 며칠을 꼬박 그리고 색을 차곡차곡 쌓아도 깊은 맛을 찾기가 어렵다. 들인 시간과 정성이 왜 관련이 없겠느냐만은 그것만이 작업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여서일 것이라 지레짐작해본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화백들의 대작과 그 무게와 가치를 나란히 하기를 감히 바라는 그런 건방진 마음이겠는가. 단지 서둘러서 하루라도 빨리 그런 그림들을 그려내고 싶다는 절실함과 더 가까울 것이다. 세상에 소개된 모든 그림의 묘사나 색채같이 겉모양은 엇비슷하게 따라 그릴 수 있지만은 깊이는 다르다. 깊이는 따라 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어려운 날들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얼핏 알 것 같은 건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대해서이다. 지금은 지금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계속 쌓는 일뿐이다. 그림에서는 얕은 수나 꾀가 통하지 않는다. 다수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은 작가 스스로가 몇십 년에 걸쳐 빛어낸 마음의 응어리가 온몸을 뱅뱅 돌다가 손 끝으로 전달되어 빠져나갈 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그런 밀도 높은 경험을 시간을 건너뛰어 몇 주 몇 달로 압축할 수는 없다.
차곡차곡 쌓으며 본인의 것을 잃지 않는 게 첫째. 비워야 할 것은 과감히 비울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게 둘째. 다른 누구보다 내 진심과 그림을 아끼되 누구보다 낮은 자세에서 냉정하게 볼 줄 알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게 셋째. 이 세 가지는 꼭 잃지 않고 작업하리라 오늘도 다짐해본다. 혹여나 이런 다짐들을 잃어버릴까 오늘도 부지런히 기록한다. 뚜벅뚜벅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