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움 속의 단단함

<노인과 바다> 서평

by 한신

*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이 있다.

'이 책에는 정말 특별한 내용, 사건이 없구나?'

노인 산티아고와 소년의 대화, 간단한 낚시, 물고기들과의 사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스며들어 있던 것은 홀로 항해하는 노인의 모습이 -때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위태로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티아고는 청새치가 미끼를 문 이후에 왼손에 쥐가 나기도 하고, 양 어깨와 손을 번갈아 가면서 줄을 지탱하고 버거워한다. 또 줄에 끌려가 고꾸라지기도 한다. 청새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해도 놓치거나 바다에 빠질 위험이 있기에 긴장감은 산티아고가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유지된다. 잔잔함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의 여정을 보며 나는 산티아고의 항해가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항해의 결과에 대한 산티아고의 태도였다. 긴 기다림 끝에 청새치를 잡았지만 이후 그를 기다리던 것은 상어들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상어들을 죽였지만 상어들이 물고기를 먹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가 패배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서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벼워진 배를 이끌고 어떻게 육지를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할 뿐이다.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을 해봤겠지만 인생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산티아고가 85번째 항해를 시작했을 때 그가 들뜬 희망을 가졌을지, 혹은 단순한 관성에 의해 움직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허탕을 친 84번의 항해를 인생으로 본다면 아마 회의가 넘치고 권태로운 인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삶의 권태에 빠진 나는 인생이 의미가 없다면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뭘까?'를 고민했었다. 기독교에서는 내세의 영원한 행복과 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니체는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에 산티아고는 삶을 그저 살아갈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저 묵묵하고 꿋꿋하게 살아갈 것. 또한 인생은 새옹지마임을 기억할 것. 이처럼 인생은 좋았다가도 다시 나빠지기도 하고 허탕 끝에 청새치를 잡은 것처럼 나쁜 일들 사이에서 갑자기 행복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산티아고는 좋은 일이 생겨도 과하게 집착하지 않았다. 또 좋지 않은 일 가운데 무의미한 희망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그 상황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렇다고 그가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뼈만 남은 물고기를 봤을 때 그는 차라리 항해를 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후회의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느끼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위들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삶을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렇게 때문에 삶이 때로는 더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게 다가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 속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권태. 그 과정에서 나는 내게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를 세상의 탓으로, 사회의 탓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고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았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신념이 있겠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살아간다고 해서 삶의 문제들과 나의 고민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될 뿐. 산티아고는 그런 내게 그저 '묵묵히 살아가라고' 조언의 말을 건네는 듯했다. 묵묵히 살아가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기지만 너무 휩쓸리지 않고 필요할 때는 한숨 푹 자고 쉬어가면 된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면 된다. 그게 삶이다.


또 하나, 새삼 깨닫게 된 점은 친구의 존재다. 산티아고가 늙어서 쇠약해지고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웃음거리로 생각할 때도 소년은 항상 그의 곁을 지킨다. 산티아고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그가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육지에 왔을 때 그를 보살피고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존재. 산티아고에게는 소년이 유일한 친구였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나오는 부분은 소설의 처음과 끝이다. 좀 확대 해석을 하자면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의 처음과 끝을 함께할 만큼 소중한 존재들이다. 산티아고가 홀로 항해를 가던 때에도 그는 소년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소년의 존재는 그가 긴 항해를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 소년이 없었다면 그가 그런 긴 항해를 끝낼 수 있었을까? 혹은 수확이 없던 항해들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을까? 없었을 것 같다.


실존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때로는 우월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삶의 부조리함이 진리이며 그것을 자신만이 깨달은 것 같은 오만함. 그래서 더 내면 속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산티아고와 소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설령 삶이 부조리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외부에 있는 타인의 존재이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내가 느끼고 있는 나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단조롭다면 단조로울 수 있는 소설 속 한 노인의 삶을 통해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산티아고처럼, 끝없이 나아가고 항해하는 삶을 살고 싶다.


글을 쓰다보니 책의 내용과 주제가 최근에 인기 있던 <폭삭 속았수다>의 양관식, 오애순 부부가 떠올랐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양관식이라는 캐릭터에 열광했는데, 어쩌면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준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들이 동경하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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