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서평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인 <일리아스>의 무대는 트로이아다.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아로 도주하고, 이에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아를 침공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이어지는 긴 전쟁이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이다. 줄거리 자체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자주 접했기 때문에 읽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그리스인들과 트로이아인들로부터 인간다움에 대해 새로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일리아스를 통해 느낀 인간다움은 '솔직함'이다. 그들은 철이 없어 보일 정도로 솔직했다. 초반부에 그리스의 장군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누가 브이쉐르를 여종으로 데려갈 것인지를 두고 다투게 된다. 결국 그녀를 아가멤논이 데려가게 됨으로써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던 여종과 떨어지게 되고, 더불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예전에 만화로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아가멤논이 참 못나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둘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트로이아를 함락하기 위해 그리스의 많은 병사들과 장군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연합의 수장과 그리스에서 가장 용맹하기로 소문난 아킬레우스가 사사로운 이유로 대사를 그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가 전투에 승리하고 종을 취한다는 것이 명예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시대였을 수는 있지만, 한 여종의 소유를 위해서 전쟁이 길어지고 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매우 솔직하다는 점에서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기심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종에 대한 욕심과 자존심, 그것에 대해 두 장수는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이로 인해 더 많은 사상자와 마찰이 생기고 피해가 커진 것도 맞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에 의한 결과를 따지는 것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솔직함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크게 드러내는 사람을 부정적인 의미로 이기적이라고 한다. 배려의 미덕이라고 해야 할까. 양보하는 것, 한번 더 참는 것. 묵묵히 견뎌내는 것. 이런 것들이 보통 미덕이라고 여겨진다고 생각한다. 집단 내의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무언의 눈치로 억압하기도 한다. 집단을 위해 개인의 목소리와 의견, 개성과 감정 등을 최소화하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당연한 감정들을 그저 악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기심이란 어쩌면 자아가 존재하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자신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누구를 챙길 수 있단 말인가. 슬픔, 분노, 질투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당연하게 생기는 감정들, 없어서는 안 될 감정들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감정들을 무조건 억누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에서 이러한 솔직함과 자연스러움, 주체적인 모습은 신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신들은 트로이아를 지지하는 신들과 그리스를 지지하는 신들로 나뉘어서 싸운다. 신이지만 그들에게 공정함이나 옳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라서 인간을 돕고 때로는 상대 진영을 도와준다. 정말 변덕스럽고 '인간적인' 신의 모습이다. 능력은 신적이지만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인간과 다를 바 없다. 호메로스도 이런 모습들이 -즉 솔직함, 용맹함, 긍지, 분노, 슬픔, 기쁨-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들이기에 신들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속성을 투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무한한 이기심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