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더라도 천천히

<열린사회와 그 적들> 서평

by 한신

*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칼 포퍼의 대표 저서다. 칼 포퍼를 잘 모르는 사람도 '반증가능성'이라는 용어는 들어봤을 것이다. 포퍼에 의하면 닫힌사회를 주장한 철학자는 플라톤이며 열린사회는 그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닫힌사회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주의와 자연적 관습주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역사주의란 역사란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의 미래와 과거까지도 알 수 있다는 사상이다.


플라톤은 역사주의를 기반으로 세계를 '쇠락과 쇠퇴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역사가 쇠퇴의 과정이라면 역사 이전, 즉 처음에 존재했던 국가는 아주 신성하고 결함이 없는 국가가 될 것이다. 플라톤은 이를 이데아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이데아인 국가가 쇠퇴한 원인은 무엇일까? 변화, 정확히는 계급의 변화다.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로 나뉜 계급구조에 모종의 변화가 생기면 그때부터 국가는 쇠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국가의 몰락을 막기 위해 계급제도를 더욱 곤고하게 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곤고함은 지배계급을 바탕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플라톤은 지배계급의 사욕으로 인한 분열을 막기 위해 공산주의, 즉 서로의 소유물을 공동소유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자연적 관습주의란 뭘까?


자연적 관습주의란 불변적 금기나 법률을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나 계절의 주기 또는 그와 유사한 자연의 규칙성과 같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이 도덕적인 가치를 내포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역사주의와 자연적 관습주의를 바탕으로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적인 통치자는 '철인'이다. 철인은 종족의 수명과 관계가 있는 기간에 관한 지식에 능통하며 각 계급의 피가 섞이지 않도록 조율할 능력을 가진 자이다. 각 사람이 어떤 계급에 속하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계급 간 교류에 제한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철인 사상이 우생학적 요소들과 전체주의 등의 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란 엄격한 계급구분과 계급지배의 유지를 통해 모든 변화를 억제하는 것이다.


포퍼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개인적인 우수성이 비록 확인된 경우라도 그러한 우수성이 혈통적이든 지성적이든 도덕적이든 교육적이든, 결코 정치적인 특권을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나의 신념을 밝혀두고 싶다. 현대 문명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민족적인 우월성을 하나의 신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확고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월한 국민에게 특별한 도덕적 책임을 지워줄지언정 특별한 정치적 권리를 만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지성적으로 도덕적으로 교육적으로 우수한 국민들에게 비슷한 요구를 해도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반하여 포퍼가 제시한 점진적 공학과 열린사회는 무엇인가?


포퍼가 지향하는 사회과학의 방법 중 하나인 점진적 공학은 유토피아적 공학과 대비되는 단어다. 점진적 공학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인간의 어떤 요구를 인식한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제도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에, 행복하게 해달하는 요구가 아니라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는 불행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 따라서 점진적 공학자는 사회의 악과 가장 긴급한 악을 찾고 그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방법을 적용할 것이다.


2. 문자 그대로의 점진적 변화 추구

작은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그 변화를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다른 요소들과의 조화는 이뤄지는지, 앞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포퍼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 큰 실수를 할 리스크를 피해 작은 변화를 점진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열린 사회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추상적 사회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인간집단 및 그러한 실제적인 집단체제가 갖는 특징은 상당히 사라진다. 즉 국가라는 것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개개인의 집합이다. 절대적인 국가의 역사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의 규범들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으며 개인들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독자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책임은 각 개인에게 있다.


2.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도주의적인 사회

탁월한 자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는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앞서서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 그것이 장점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를 의심하지 않으며 타인의 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물론 혼란스럽거나 범죄가 만연한 사회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들과 법을 존중하며 피해입은 약자에 대한 보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열린사회는 타인의 자유를 인정하고 형재애 속에 사는 사회이다.


3. 민주적 사회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


4. 답습적 사회

논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장애물이 아니라 현명한 행위를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예비행위이다. 꼭 결론이 나오지 않아도, 이상적인 결론이 도출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하나의 의의가 있는 사회이다.


5. 개인적, 점진적 사회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인주의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의 사회다.


포퍼가 주장하는 열린사회는 민주주의와 유사하다. 민주주의는 옳은 것일까? 중우정치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우매한 다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사회. 이상적인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이끄는 사회는 독재라도 괜찮을까? 근데 그러한 지도자가 현실에 있긴 할까? 독재는 추진력이 있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독재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뭐가 되었든 우리는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는 한 표 속에서 그 결과가 때로는 틀릴지라도, 또 때로는 돌아갈지라도.

느리더라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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