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하드 뒤지다 나온 옛 여행기 3 (2007)
‘금연’, ’ 금주’, ‘다이어트’, ‘책 읽기’… 새 해 첫날이면 참으로 많은 결심들을 하시죠?
그러나 바늘과 실처럼 이 결심을 하고 나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친근하게 다가오는 고사성어가 있죠. 카드 값이 우리를 괴롭히고, 재테크가 우리를 멀리해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의 오랜 벗 바로 ‘작심삼일’.
이제는 그만 이 친구와 거리를 두고 싶지만 1년 365일, 24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하는 가족 같은 녀석이죠. 올해 아직 절반이나 남았습니다. 결심만 하지 마시고 쉬운 것부터 실행에 한 번 옮겨 보시면 어떨까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분들. 떠나자니 업무와 가족과 TV가 아쉬워 못 가시는 분들 이제는 냉정하게 다 떨쳐내고 갑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새 해 준비해야 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동해안 바다를 보면서 하루 종일 걸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번 여행의 목표는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군에서 울진군까지 도보 여행 떠나기입니다. 어렵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답니다. 영덕에서 울진까지는 해안 도로가 잘 깔려있어서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서울에서 출발해서 영덕 강구 터미널에서 내리세요. 거기서부터 2km가량을 걸어가면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안 도로가 눈 앞에 펼쳐진답니다. 이제부터 울진까지 40km의 해안 도로를 걸어 봅니다.
아스라이 펼쳐진 저것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분간이 안 되는 바다를 옆에 두고 걷다 보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지난 1년간 짜증 냈던 일들’, ‘잘 풀리지 않아 걱정되었던 일들’, ‘투덜투덜 불만만 가득했던 생각들’ 모두 시원한 바다 바람에 함께 날아갑니다.
길을 걷다 다리 아프면 부둣가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펼쳐진 바다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준비해 간 간식을 먹던지 담배 한 대로 폐를 그을리면서 아무 때나 쉬어도 됩니다. 누가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오늘 당장 울진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도 없습니다. 이때만은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내키면 3박 4일로 걷든지 당장 내일이라고 집에 가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셔도 됩니다..
내키는 대로 쉬고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면 또 다른 볼거리들이 펼쳐집니다. 길 곳곳에 빨래처럼 널려있는 피데기(덜 마른오징어). 바닷속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갈매기들. 영덕의 명물인 대게 등대와 풍력 발전소. ‘휭~휭~’ 힘차게 돌아가는 터빈 소리를 들으며 바다가 묘하게 어울립니다.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덧 푸르르던 하늘과 바다는 어느덧 보랏빛으로 변해갑니다. 스스한 바닷바람과 함께 찾아온 저녁의 초겨울 바다… 가슴속에서 아련하게 밀려오는 ‘옛 연인에 대한 기억들’, ‘ 참 친했었는데 직장 생활하다 어느덧 만나지 오래되어 전화하기에도 어색한 친구 녀석’,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꾹꾹 눌러왔던 기억들이 어느덧 온몸을 휘감아 돕니다. 옛 추억을 더듬고 끄집어 내다보면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 만큼 왔는지도 모르게 어둠이 찾아옵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한 밤 중에도 피데기를 걸어 놓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휴가철도 아닌데 다 큰 사내가 혼자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니 무얼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면서 어두운 길 자동차 조심하라며 걱정의 말도 아끼지 않습니다. 길가 한 구석에 있는 민박집에서 오늘 하루를 마칩시다. 인심 좋은 주인 할머니가 먹으라며 준 피데기를 구워 캔맥주를 마시며 오늘 하루의 고단한 여행을 되새기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어젯밤의 힘겨운 여행길에도, 평상시 대로라면 지긋지긋한 출근길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새벽인데도 눈이 번쩍 뜨입니다. 역시 동해안 최고의 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일출입니다. 찬란한 일출은 쉽사리 만나기 어렵습니다. 밤새 바다 안개에 해님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은 것이거든요.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았다는 뿌듯함이 매서운 새벽 겨울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슴 깊숙이 숨을 내쉬고 뱉어 보면 후련함 마음이 생깁니다. 그동안 쌓였던 답답함 들은 한숨 속에 섞여 맑은 바다 공기에 뒤섞입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영덕이 끝이 나고 울진에 도착합니다. 하루 동안 걸어온 길인데 왜 그렇게 고향을 떠나는 것 같은지.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야속하게도 울진은부터는 해안 도로가 없이 지방 고속도로가 나옵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공사장과 쿵짝쿵짝 들려오는 관광버스에 이제는 떠날 때가 됐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울진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오바마’. 오바마의 인기가 경북 울진에까지 퍼져 있을 정도인지는 몰랐네요~ 바닷길 여행 어떠셨나요? 절대 힘든 일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여행입니다. 걷다가 지치면 쉬고, 자고 싶으면 민박집에 가서 자면 됩니다. 단 며칠만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