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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Sep 28. 2019

왜 베트남시장인가
-8화.소비자 연령별 분석 I

1. 그간의 시장 부진에 대한 변명



프랑스의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인 자크 아탈리는 2007년 출간한 <미래의 물결>에서 베트남이 정치, 금융, 교육개혁, 인프라 건설과 부정부패 척결을 이룬다면 2025년에 인구 1억 2,500만명의 아시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한동안 베트남은 ‘Post China’, ‘Next China’, ‘China +one’ 등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유망 받는 시장으로 각광을 받았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베트남 경제는 급격히 힘들어졌으며 국영 조선기업 Vina Shin이 부도 처리되며 베트남이 한동안 투자자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났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베트남 경제가 힘든 시기라고들 말하는데 나는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나 힘들었지 베트남인들이나 베트남 기업 자체가 힘든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자료 출처, 2018년 KOTRA 하노이 무역관>


2008년 리먼 브라더스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중산층들이 무너지는 회사에 직장은 잃고 급등한 이자와 떨어지는 집값 때문에 가장 힘든 시기였지 베트남에서는 부도난 회사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대출 받아 집을 산 중산층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슨 영향이 있었을까 싶다. 중산층의 몰락은 소비 시장을 얼어 붙게 만든다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베트남 소비 시장은 더디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투자로 버블 경제가 이루어지던 것이 적절한 시기에 잘 꺼뜨려줬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2008년부터 약 7년 동안 거품 경제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지난 10여년간 베트남 소비 시장의 더딘 성장을 다른 요인으로 바라 본다. 어느 사회에서나 30~40대는 상대적으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경제력이 커서 소비재 시장에서 핵심 소비층이다(다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20대 < 10대 순으로 소비력이 그 못지않게 커진다). 


베트남 역시 30~40대가 주요 소비층으로서 구매력이 가장 큰 집단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베트남에서는 이 30, 40대들의 소비 형태가 시장의 확장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그 이유를 그들의 유년 시절을 통해 살펴보고 베트남 소비 시장의 모습 예측해 보려고 한다. 특히 30대와 40대 이상 연령층을 중심으로 그간 베트남 화장품 시장이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각 소비 연령대가 처했던 상황에 따라 정리해 보았다. 



2. <베트남 70년대생 = 한국의 6.25세대> 


미국과의 전쟁은 1975년에 끝이 났지만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캄보디아와의 전쟁이 이어졌다. 베트남이 일방적인 승리한 전쟁이었지만 경제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캄보디아 전쟁에 대해 불만을 품은 중국이 1979년 베트남을 침공해왔다. 중국의 정예 부대 30만명이 넘어왔지만 베트남 북부 국경 지대의 예비 병력과 민병대에 의해 전쟁은 한 달 만에 중국이 철수함으로써 끝이 난다. 베트남은 1970년대가 끝이 날 때까지 전쟁을 겪은 것이다.


<사진 설명, 중공군 포로를 감시하는 베트남 여성 민병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쟁이 끝나고 10개년 국가 계획 성장 전략에 따라 전쟁 직후 토지,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배급제가 실시되었다. 미국의 경제 제재 속에 생산 수단의 국유화와 배급제는 생산력을 떨어뜨려 인민들은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쌀이 부족해 해마다 쌀을 수입해야만 했다. 


<사진 설명, 베트남 40대들은 한국의 6.25를 겪은 70대들과 같은 경험을 겪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의 1970년대생들은 한국의 6.25세대들과 동일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자산이 꽤 많으신데 어렸을 때 기억 때문에 전기도 아껴 쓰고, 이면지를 철저하게 사용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의 힘든 기억 때문에 아껴 쓰는 것이 당연한 한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30대 중반 ~ 40대 중반들이 사회 핵심 소비 계층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과거 10여년 동안 이 전쟁을 겪은 60~70년대생들이 베트남에서 주요 소비 층을 형성하다 보니 소비력 적고 그간 베트남이 소비재 시장이 더디게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피소드 1. 쌀국수 사건


이에 관련된 개인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2013년 나는 아침마다 회사 건물 지하에서 VND 50,000(한화 2,500원 가량)의 쌀국수를 먹었다. 그런데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옆자리 마케팅 매니저가 ‘너는 비싼 쌀국수를 먹는다’며 타박했다. 길거리에서 먹으면 한국 돈으로 1,000원 ~ 1,300원이면 먹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쌀국수 한 그릇이 1만원이 넘는데 2,500원이면 정말 싸게 먹는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넌 너무 사치스럽다’는 핀잔만 돌아 올 뿐이었다. 마치 한 줄에 1천원짜리 김밥천국 김밥을 먹다가 3천원짜리 종로김밥을 먹는다고 6.25세대 어르신한테 혼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에피소드 2. 바질 씨


그 매니저와의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한국에서 바질 씨, 치아 씨드를 물에 불려 먹으면서 다이어트 하는 것이 유행일 때였다. 나도 다이어트를 해보겠다며 베트남에서 흔하디 흔한 바질씨를 물에 불려 아침마다 먹고 있어다. 그러자 또 옆자리의 매니저가 ‘저거 내가 어렸을 때 먹을 것이 없어 먹었던 것인데…’라고 한다. 또래의 누군가에게는 다이어트를 위해 영양가 없이 위장을 채우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주린 배를 채우기 먹었던 것이었다. 그 매니저가 1977년생이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유학을 다녀왔고 미국도 종종 다녀오는 일반 노동자의 10배가 넘는 급여를 받는 베트남의 중상층이었다. 어렸을 때 먹을 것이 없어 칡뿌리를 캐먹고 꿀꿀이 죽을 먹었다는 우리 6.25세대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다.  돈이 꼭 없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경험이 소비 성향을 결정 지은 것이다.


베트남의 60년생 ~ 70년생들은 유년시절 전쟁을 겪었고 식량이 부족해 먹을 것을 걱정했던 사람들이니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어도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물론 핸드폰이나 오토바이처럼 자신을 과시할 수 있고 필요한 물건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절약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에게는 화장품과 같은 사치 품목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주요 소비층인 40대들이 소비를 적극 해주어야 소비재 시장이 커지는데 이들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미국 달러, 금,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다 보니 베트남 소비재 시장이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년간 단순하게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제 위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베트남 소비재 시장이 부진할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이다



2. <베트남 80년생 – 한국의 58년 개띠, 흥부네 가족>


1986년 12월 베트남 정부는 위로부터의 개혁 쇄신, 경제 개방을 요구하는 도이 머이 (Doi Moi) 정책을 채택한다. 이윽고 1988년 베트남 정부는 농경지 자유화를 선언했다. 1988년 45만 톤의 쌀을 수입하던 베트남은 농경지 자유화를 선언한 지 1년 만인 1989년 100만 톤의 쌀을 수출하게 된다. 1995년에는 쌀 150만 톤을 수출하면서 세계 3대 쌀수출 국가가 된다. 지금은 태국과 더불어 세계 1~2위의 쌀수출 국가가 되었다. 


<사진 설명, 도이머이 정책 이후 베트남 쌀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시기에 태어난 베트남 1980년대생들은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유년 시절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게다가 전쟁 직후 베이비 부머들인 1980년대 생들은 기본적으로 형제가 8~12명이다. 부족한 생필품에 수많은 형제들과 함께 써야 하는 상황이니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내 가족을 위해 내 것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세대이다.



사진설명, 흥부네 가족, 남의 가족 사진이라 작게...



반면 중국에서는 1980년 1인 자녀 정책을 시행한다. 이 점이 베트남과 중국 시장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중국의 1980년대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용돈과 선물을 받아 재화가 풍족하고 집중적으로 교육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사드 사태가 터지기 전 지난 10년간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꿀 빨던 시절이 바로 이 중국의 80년대생들이 30대로서 주요 소비 계층이었을 시기이다. 


베트남 30대들은 40대인 1970년대생들보다는 개선된 환경에서 살았지만 수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부족하게 살아서 소비에 꼼꼼해질 수밖에 없다. 1980년대생들은 외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2000년 초반에 외국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한 세대이다. 외국인과 일하면서 겪는 갈등과 기존 가치관과 다른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기성세대와 갈등을 빚으며 혼란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3. <70년생~80년대생 - 나보다는 자녀 교육에 집중하는 세대>


얼마 전까지 20대 초중반이면 결혼을 하는 베트남 조혼 문화는 베트남 소비재 시장의 확장을 억압해온 원인이기도 하다. 보통 두 명의 아이를 둔 가정이 대부분인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생들은 어린 시절의 가난함 때문에 돈은 아껴 쓰지만 개방화의 한 중심에 서면서 베트남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내 자식은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베트남 30대 가정들은 소득의 30%를 아이들 교육에 쏟아 붓는다. 앞서 베트남의 교육열에 대해 설명했으니 더 이상 과한 언급이겠다. 2019년 현재 베트남 최저 임금이 23만 원선이니 화장품과 같은 사치 품목 시장이 당장 커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베트남 30대 중반인 1980년대생들은 베트남 소비재 시장에서 가장 큰 소비 주체이면서도 물건이 귀한지 아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트남 소비재 시장이 커질 듯 안 커지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세대이자 1970년대생들의 자녀들인 1990년대생들부터는 베트남 시장 전망이 급격히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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