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트남과 미국이 동맹국 수준으로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가 매우 뜨겁다. 이를 지켜보는 중국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하고 있다.
남미, 아프리카, 아세안 등 전세계 80여개국에 중국산 백신을 지원하면서 백신 외교에 승기를 잡은 곳은 중국. 미국이 뒤늦게 백신 외교전에 뛰어들었는데 느닷없이 베트남이 미-중 백신 전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겉으로는 백신 기부이지만 실상은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베트남 동해와 (남중국해)메콩강 유역을 둘러싼 여러 국가들의 치열한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갈등 등 다양한 이해 관계가 숨겨져 있다.
지난 7월 27일 미국의류신발협회 AAFA, 8월 16일 나이키, 아디다스, 갭, 코치와 같은 주요 패션/스포츠 브랜드 90개 기업의 CEO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베트남에 보다 많은 백신을 지원해줄 것을 연달아 요청했다. 미국 전체 의류, 신발, 여행용품의 20%가 베트남에서 생산되는데 이번 코로나 확산으로 공급에 타격을 입게 되면서 미국 기업들이 긴급하게 요청을 한 것이다. 2020년 전 세계 나이키 신발의 50%가 베트남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어느 순간 베트남이 미국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8월 24일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카멜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박 3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많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미국은 그동안 베트남에 모더나 500만 회분을 무상 지원했는데 이번에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화이자 100만 회분을 추가로 가지고 왔다. 베트남은 기존 화이자 구매 계약 3,100만회분에 이어 2,000만회 분을 추가로 계약했는데 화이자는 베트남 청소년 900만명의 백신 접종을 위한 2,000만회 분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미국 국방부’가 베트남 전국 63개 성에서 화이자 백신을 -70도에서 보관할 수 있는 초저원 냉장고 77개를 기부하기로 하고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괌 공군기지에서 베트남으로 수송 작전을 펼치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는 백신 유통과 전염병 퇴치 지원 명목으로 2,3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거기에 아울러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CDC 동남아시아 지역본부를 베트남 하노이에 설치하기로 하고 해리스 부통령 방문에 맞추어 개소식을 했다. 전 세계에 4개 밖에 없는 CDC 해외 지역본부 중 하나를 베트남에 설치한 것은 미국이 베트남을 거점으로 중국이 ‘백신 일대일로’를 통해 동남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미국이 베트남에 지원하는 초저원 냉장고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기부하고 공군 수송기로 배송하는 것은 베트남과 미국의 군사적 협력을 시작하는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중국은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에 도착하기 두 시간 전 주베트남 중국대사가 베트남 총리를 만나 ‘평화로운 사회주의 이웃 국가 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며 중국 백신 200만회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가져오는 화이자 100만회 분을 의식해 보다 많은 2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베트남과 미국의 협력을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기 한 달 전 로이드 오스틴 미국방부장관이 먼저 베트남을 다녀갔다. 베트남과 미국 양국 국방부 장관이 다양한 현안에 대해 협의를 했는데 여러 대목 중 눈에 띄는 것은 ‘해상법 집행 능력 강화’인데 결국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베트남 동해 (남중국해) 문제에 미국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는 것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부통령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 주석과 만나는 자리에서 더 노골적으로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준수하도록 압박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베트남이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해역에서 ‘미국 해안 경비 요원을 파견하는 것을 지지하며 남중국해에서 강력한 주둔을 유지할 것’이라고 까지 했다. 중국은 베트남 주재 중국대사관명의로 ‘미국이 영유권 분쟁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배후에서 검은 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이 수위 조절하느라 외교부 성명이 아닌 베트남주재 대사관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지만 내용은 이례적으로 거칠다.
전세계 언론들이 ‘남중국해 갈등’에 미국이 개입한다는 것에만 집중 보도하는데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요소가 몇가지 더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베트남을 떠나며 남긴 담화문에서 앞으로 베트남과 협력할 분야로 ‘기상관측을 위한 우주개발협력’을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기상위성이지만 중국을 겨냥한 군사위성으로 전환이 가능한데 미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표명한 것이다
또한 ‘기후 변화에 따른 메콩강 유역의 침식에 대해 깊은 우려를 베트남 정부와 공감했다’라고 했다. 이는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 일환으로 메콩강 중상류에 해당하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 차관 형태로 11개의 댐을 설치하면서 메콩강 하류인 베트남, 캄보디아에는 유입 수량이 줄어 농업과 어업에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2030년까지 추가로 댐을 30개에서 최대 70개까지 더 짓겠다는 입장이다. 필자는 남중국해보다 메콩강 유역에서 친중국가와 반중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해리스 부통령이나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모두 공통적으로 방문한 곳이 미국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던 호아 로 교도소이다. 오스틴 국방장관은 베트남 첫 방문지로 선택했고, 해리스 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호아 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존 매캐인 상원의원의 3주기 추모일에 맞추어 방문했다.
미국 초고위급 관계자들이 연달아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서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제스처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해석이 과도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해리스 부통령이 교도소 방문 전날 주베트남 미국대사관 신축 이전 협약 체결식을 이행했다. 신축 비용이 12억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조 4천억원이다. 베트남과의 크나큰 새로운 동맹자적 위상에 걸맞게 대사관 규모도 바뀌는 듯하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정말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고 아세안지역의 반중전선의 선봉에 서게 될까? 베트남은 외교 줄타기의 명수라 절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적극적인 관계는 형성하겠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대척점에 서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 주미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팜 꽝 빈이 베트남 현지 언론 VNExpress에 기고한 글 일부를 인용하며 앞으로 베트남이 취할 베-미-중 관계를 예상하며 글을 마친다.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은 어느 편을 들거나 평화와 안전을 해치거나 국제법을 무시하는 그러한 경쟁을 원하지 않는다. 베트남과 아세안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과 중국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