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내달렸다
집 앞에서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종점까지 내달렸습니다.
호찌민 시내 한 복판은 2011년 대도시의 모습이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80년대 한국 어느 읍내의 모습들이 이내 보입니다.
한 1시간 30여분을 내달렸을까요.
한적한 시골 마을이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마구 사 먹어 봅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갑자기 검은 먹구름이 저 멀리 보입니다.
이럴 때는 재빨리 아무 카페나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이내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집니다.
베트남 남부 지방이 우기에 접어들면서 하루에 1~2차례 비가 쏟아집니다.
시원한 아이스 재스민 티를 시키고 카페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카페 안에는 토요일 오후를 장기로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보는 장기 두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자신의 묘수가 잘 안 먹히는지 한숨 섞인 담배 연기와 함께 안쓰러운 표정이 얼굴 가득합니다.
'요즘 잘 안 풀리는 일도 많은데 장기도 잘 안되나' 싶은 얼굴입니다.
말 한마디 안 하고 조용히 장기 말을 주고받는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랜 고민 끝에 한 수 한 수 조심스레 두는 어르신과 이미 예상했다는 듯 바로바로 응수하는
어르신의 엇갈린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상대처럼 보입니다.
1시간 여 동안 쏟아지던 비는 어느덧 그치고
시원하게 마셨던 재스민 차의 셈을 치려고 가격을 물었습니다.
"바우 니우 티엔?" (얼마예요?)
"못 옌" (1천 동이예요) 잘 못 들었나 싶어
"못 무이 옌? (1만 동이요?) 하고 1만 동짜리 지폐를 내밀었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아줌마가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못 옌(1천 동이예요)"
하며 내 지갑에서 1 천동 짜리를 가리킵니다.
비 오는 날 비를 비해 시원하게 마신 아이스 티 한 잔에 50원이랍니다.
역시 전 도심 한 복판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는 시골이 좋을 수밖에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