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 세계 정치, 외교, 경제에 끼치는 파급 효과에 대해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와 크게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베트남이 의외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베트남의 절대적인 우방]
러시아는 베트남의 절대 우방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 (SIPRI)에 따르면 2020년까지 지난 20년 동안 베트남은 탱크, 전투기, 잠수함 등 군사장비의 80% 이상을 러시아에서 구입하고 있다. 흔히 월남전이라 부르는 2차 인도차이나 반도 전쟁 (1955년 ~ 1975년)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베트남에 경제적, 군사적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베트남 군관, 기술자, 과학자 등 수많은 인재들이 러시아에서 유학을 했다. 그래서 현재 군, 정계, 재계, 학계 등 베트남을 움직이는 엘리트들 중 상당수가 러시아 유학파들이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 공화국 역시 베트남 유학생들을 받아 교육을 시키고 전쟁 물자를 지원해준 절대 우방 국가이다. 그래서 러시아 유학파 출신이면서 우크라이나와 인연이 있는 베트남 정재계 인사들이 상당수이다. 2022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7명의 베트남 억만장자 중 4명이 우크라이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기업 빈 그룹의 팜 낫 브엉 회장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하다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하리코프) 사업을 시작해 큰돈을 벌어 베트남으로 돌아와 지금의 빈 그룹을 세웠다. 그 외에도 SK그룹이 투자해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고 실제적으로 베트남 경제계를 좌지우지하는 Masan 그룹의 응웬 당 꽝(Nguyen Dang Quang) 회장, 베트남 항공 대중화의 1등 공신 Vietjet 항공의 응웬 티 프엉 타오(Nguyen Thi Phuong Thao) 회장, 호 훙 안(Ho Hung Anh) 테크콤은행(Techcombank) 회장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경험이 있다.
그런데 비극적 이게도 베트남과 러시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한 지 3개월 만에, 베트남이 우크라이나와의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지 2주 만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베트남의 고민이 시작된다. 러시아가 큰 집 사촌이라면 우크라이나는 작은 집 사촌인데 둘의 싸움에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일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에 베트남은 기권표를 던졌다. 다만 베트남 정부는 “관련 당사자들이 서로 자제하고 유엔 헌장과 국제사회의 기본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정도의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전쟁에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시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베트남인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비난하는 네티즌들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러시아 군과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과 어린아이들이 전쟁의 공포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광경에서 수 십 년 동안 전쟁을 겪은 베트남인 본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이 1975년에 끝나고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으니 40대 후반 이상의 수 천만명의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참혹한 전쟁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나 베트남 거주 중국 화교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79년 베트남을 침공한 중국의 논리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거주 러시아인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 군사작전’을 벌인다는 러시아의 논리와 같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를 위한 시국 기도 회사에서 우크라이나 대사 대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베트남인
주베트남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개최한 우크라이나 돕기 자선 행사에 참석한 베트남 사람들
게다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현재 베트남 동해 (남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언제든지 베트남을 침공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중국’ / ‘우크라이나=베트남’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베트남 사람들의 러시아에 대한 비난은 거세다. 러시아 침공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적극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비난하지 않은 것은 미래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할 명분을 주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의견도 나온다.
[중국을 견제해줄 옛 친구 러시아와 새 친구 미국과의 갈등]
베트남이 오래전부터 러시아와 가까이 지낸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천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 뼛속까지 반중 국가인 베트남은 중국과 앙숙 관계인 러시아를 적극 활용했다. 1969년 3월 소련군 300여 명, 중국군 1천 여명이 사망하고 수 천명이 부상을 당한 중국과 소련의 국경 분쟁은 소련이 중국을 핵 공격을 통한 전면전까지 계획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 중소 국경 분쟁에 대해 베트남이 소련을 지지하자 중국은 베트남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이후 중국은 1978년 12월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선언하며 러시아와 베트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중국은 미국과 수교를 맺자마자 1979년 2월 베트남을 침공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의 새로운 우방이 생겼는데 바로 미국이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의 베트남 끌어 안기가 매우 적극적이다. 베트남 역시 베트남 동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노골적인 영토 분쟁에 맞서기 위해 미국 항공모함을 베트남 다낭에 입항하게 하는 등 급속도로 두 나라는 가까워졌다. 대륙에서는 오래전부터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해주고 이제 동해(남중국해)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이 중국과 맞설 수 있도록 해안순시선과 고속정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코로나 확산으로 패닉에 빠진 베트남에 2600만 도스의 코로나 백신을 공급해준 최우방국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베트남의 최대 수출 국가는 미국으로 2021년 956억 달러를(한화 114조 원) 수출했으며 베트남은 전 세계 4번째 대미 흑자국가이다. 미중 갈등 속에 베트남이 중국을 대신할 생산 기지가 되도록 전세계에 적극 띄워준 것은 미국이었다.
또한 EU와는 2019년 FTA를 체결해 무역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과 EU가 러시아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으니 베트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중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든든한 군사적 후원자인 러시아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베트남에게 있어 매우 불안한 일이다.
오랜 우방끼리의 갈등에다 새로운 우방까지 가세한 복잡 다단한 국제 정세 한가운데 빠져 잠못드는 베트남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베트남만큼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 모두와 친밀한 관계인 나라도 없다. 복잡한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줄 수 있는 나라가 베트남일 수도 있다. 어느 한 쪽의 편에 서지 않으며 자신들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온 줄타기의 달인 베트남의 외교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