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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Feb 23. 2018

왜 베트남 시장인가? - 3.자신이 삶의 주체인 여성들

베트남 건국 신화에 따르면


선계의 여인인 어우 꺼와 용왕의 아들인 락롱 꿘이 서로 사랑을 해서 알을 하나 낳았다. 그런데 이 알이 100개로 늘어 낳고 그 알에서 100명의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다.

뭍의 사람과 바닷속의 사람이라 함께 지낼 수 없었던 둘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 락롱 꿘이 "나는 수궁에서 생활하는 용이며 부인은 뭍에서 생활하는 선인이신데 비록 서로가 달라도 음양 화합하여 자녀가 생기는데 생활하는 지역이 같지 않으니  영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데 내가 50명을 수궁으로 데리고 가서 여러 지역을 다스리게 하며 부인에 따르는 50명은 나라를 여러 지역을 나눠 다르시도록 하세요. 산이든 물이든 일이 있으면 서로 버리지 않고 같이 해결하도록 합시다"

어우 꺼의 50개의 알에서 부화한 아이 중 가장 힘에 셌던 ‘Hung Vuong(흥 붕)’을 왕으로 삼고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 랑’ 왕국을 세운다. 이후 반 랑 국의 왕들은 모두 훙 붕이라 불렸고 어우 꺼가 낳은 이들 백 명의 아들이 곧 바익 비엣(백월, Bách Việt, 百越)의 시조이다
                                                                                            - 서울대학교 Nguyen Hong Thuy 해석 참조
어우 꺼와 아이들


아마도 모계 중심의 종족과 부계 중심의 사회가 서로 연합했다가 관계가 틀어진 것을 그렇게 전설로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이 자신의 시조임을 알리고 이를 숭배하다는 점에서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추청해   있다. 이것이 무리한 추론이 아닌 것이  있다. 


바로 베트남에는 여성 영웅들이 참 많다는 점이다.


1세기 중국의 후한을 상대로 민중 봉기를 일으킨 ‘쯩 짝’과 ‘쯩 니’라는 자매가 있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스스로 왕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봉기는 베트남 최초의 대규모의 조직적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쯩 자매가 한나라와 전쟁을 했을 때 36명의 여성 장군이 있었고 중국 군사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백발백중의 여성 궁수 스나이퍼 부대가 별도로 있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걸출한 두 명의 여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운 여성 영웅들이 더 있었다는 이야기다.


코끼리 위에서 군을 지휘하는 쯩자매와 용맹한 36명의 여성 장군들


호찌민의 전국 주요 거리 중에는 Hai Ba Trung이라는 도로명이 많은 이 쯩 자매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거리이며 음력 2월 8일에는 그들의 용기를 칭송하며 그들의 넋을 기린다. 호찌민에 있는 여성 박물관에는 이들 여성 이외에도 베트남 역사 3천 년 동안 걸출했던 65명의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와 그림이 걸려 있다.  베트남에는 수많은 여성 영웅들의 이름을 딴 도로 명이 많다. Nguyen Thi Minh Khai, Vo Thi sau, Nguyen Thi Dinh... 베트남 여성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그녀들의 이름으로 만든 도로명이 베트남 전국에 수 없이 많다.


하노이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 국가 선포하는 광경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의 민족 영웅 호찌민 주석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하노이 Ba Dinh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수립을 선포할 때 고산 지대 소수 민족 대표 1명과 평야 지대의 베트남 족 대표 1명 그리고 두 명의 여성이 베트남 국기를 게양하게 했다. 베트남에서는 여성의 혁명을 함께 이루어낸 동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소수민족을 형식적인 대표로 내세울 수는 있다 하더라도 여성을 두 명이나 내세운 것은 호찌민 주석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 전체가 여성을 동등한 위지로 인정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민족적 평등, 성별의 평등을 확연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베트남 내 여러 박물관에 걸려 있는 베트남 전쟁의 그림들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용맹한 베트남 전사들의 모습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전쟁 중에 여성들은 거의 일방적인 피해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들은 전쟁에 적극 참여했고 단순히 보조 업무를 하지 않고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하노이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추락한 미군 비행기, 개인적으로 베트남 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존경해 마지않은 여성이라며 최고액권에 초상화로 오른 신사임당. 그녀의 위대한 업적은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나대지 않고 집에서 남편 봉양을 잘하고 아들을 위대한 학자로 키우는데 뒷바라지한 것이라는데... 대한민국은 여성에 대한 대접이 이렇게 박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에 여성 영웅들이 정말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니면 남성 중심의 사회가 이를 철저하게 막아 버리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는 인물인 유관순 누나 말고 우리 역사 속에 여성 영웅이 있었던가?

행주산성에서 행주치마로 돌을 날랐던 무명의 조선 아낙들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성 영웅이랄까..


베트남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재산 상속 권한이 있으며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여성이 제사를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에서 전통적으로 추앙받는 27 신 중 절반인 13명이 여성 신이다. 게다가 현재 베트남 국회의원의 30%는 여성이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현재 현재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이 2,300 달러 (2017년 IMF 기준) 수준. 지금 당장은 소비력이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매우 높고 자기 스스로가 삶의 주체인 베트남 여성들의 Buying Power 매우 강하다. 지금 당장 절대적인 소비 금액은 적지만 소비재 시장을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여성 소비자들의 위상이 높은 나라라면 베트남 시장의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베트남 시장 4번째 이야기 조만간  딜리버리합니다

영미 영미 영미~~~~ 스왑! 스왑!  헐!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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