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눈물을 멈추지 못한 나는 아파트 단지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갑자기 친구 E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눈물을 대강 수습하고 전화를 받았다. E가 내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간헐적인 훌쩍임도 숨기지 못했다.
“뭐하노? 말동무라도 해줄까?”
“아이다. 그냥 마음 정리 좀 하려고 걷고 있다.”
“그래… 알겠다…”
“어.”
눈물, 콧물을 숨기려다 보니 대화를 길게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눈물 흘리는 게 부끄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15분 정도 눈물을 수습하며 남은 산책을 마무리했다. 한바탕 울고 나니 머릿속이 상쾌해지고 속도 조금 풀리는 것 같았지만, 시원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바닥난 자동차 연료탱크에 달릴 수 있는 정도의 연료만 겨우 채워 넣은 수준의 갈증 해소밖에 되지 않았다. 간신히 채운 에너지로 딸에게 필요한 것들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 아무리 나와 아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해서 가사 업무를 나눴다고 하지만, 딸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아내의 일이라고만 여기고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면지를 꺼내서 내가 해야 할 일, 알아내야 하는 연락처, 추가적으로 딸에게 필요할 것 같은 사항들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는 탁상공론으로는 당연히 답이 나오지 않았고, 답답함만 쌓여 가고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내려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고민하고 있으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답답함이 짜증으로 진화하려던 찰나에, E가 했던 제안이 떠올랐다. 늦었지만 혹시 말동무 제안이 아직 유효한지 물어봤고, 고맙게도 바로 달려와 준다고 했다. 내심 오랜 시간 함께 알고 지낸 H도 같이 오길 바라고 있었으나, 일요일 밤늦게 친구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E를 기다리면서 이면지 더미에 의미 없는 낙서만 이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E는 일찍 도착했고 웬일로 오는 길에 센스 있게 H에게도 연락을 해줬다고 했고, 감사하게도 바로 오겠다는 이야기까지 전달해 줬다. 우리 둘은 최근 며칠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차피 H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브리핑해 줘야 할 테니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다른 할 말은 없으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H도 곧 도착했고, 손님 맞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던 나는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던 제로 콜라를 무더기로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뒀다.
나는 둘에게 최근 며칠간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브리핑해 줬다. M병원에 가게 된 이야기, G병원에 겨우 전원한 이야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내 병의 경과까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어제도 양가 부모님께 브리핑해 줬지만, 그때는 부모님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정제된 정보만 전달했다면, 친구들에게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크게 의식하지 않고 얘기했다. 덕분에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두렵고, 외롭고, 무서웠던 순간들을 얘기하면 눈물이 주룩주룩 날 줄 알았는데, 조금 전에 다 울고 올라왔던 모양인지 오히려 덤덤했다.
H와 E는 하루 종일 자가면역뇌염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본 것 같았다. 어제오늘에 걸쳐서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을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아내의 병에 대해서 검색하거나 알아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두 친구가 많이 알아봐 준 상태였다. 특히, 간호학과 출신인 E의 아내는 주말 내내 이 병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았다. 부부가 열심히 공부한 내용들을 내게 전달해 주면서 블로그, 유튜브 링크도 하나씩 전달해 줬다. 하지만, 나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E의 얘기에서 생략된 내용이 많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분명 예후가 좋지 않은 케이스들에 대해서는 그들끼리만 알고 내게는 좋은 사례만 공유해 줬다는 것을 확신했다. G병원의 당직의의 말만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었는데 비로소 현실 직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셋 다 내일 출근해야 해서 11시쯤 작별을 고했다. 그들도 어차피 내가 힘내라는 말을 듣는다고 힘이 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별말하지 않았다. 그들을 배웅해 주기 위해 함께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H는 그답게 인사하고 쿨하게 떠났고, E는 우리 집 주차장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면서 괜스레 자기 차 앞에서 서성거렸다.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센 척하느라고 가는 거 보고 올라갈 거라고 하면서 억지로 차에 태워 보냈다. 친구들을 집에 보내놓고 집에 올라갔다. 다시 혼자였다.
유튜브에서 쇼츠를 보다가 우연히 친구에게 하는 도움 요청에 대한 짧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Simon Sinek이라는 미국 작가가 나와서 곤경에 처했던 절친한 친구와 했던 이야기를 공유했다. 뒤늦게 듣게 된 그 친구의 사정이 매우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괘씸하다고 했다. 그토록 힘든 일이 있었는데도 한 번의 언질도 없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역정을 냈다고 했다. 그들이 나눴다는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너는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는데, 도대체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한 거야?”
“내가 안부를 물었는데, 시큰둥하던데?”
“아니, 우리는 항상 서로 안부를 묻는데 네가 도움 요청하는 안부를 도대체 어떻게 구분하라는 거야?!”
그 이후로 그들은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다고 했다. 정말로 힘든 일이 있어서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면, 특별한 말 없이 그저 서로에게 ‘8분만 내게 내줄 수 있어?’라고 물어보면 나머지 한 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암호로 심히 곤란한 상황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잠깐의 위로를 부탁하는 것이다. H와 E가 가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이 내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점에 각자의 ‘8분’을 내줬다. 아내도 강력한 응원이 필요했지만, 나 역시도 응원이 필요했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가득한 내가 위로받고 아내와 가족을 위해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의 시작은 이 친구들의 ‘8분’이었을지도 모른다.
Simon Sinek - It Means "I Need You": The Power of 8 Minutes
딸에게 필요한 것은 내일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답답함만 늘어가고 있었기에, 집 정리를 적당히 해놓고 그냥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E가 보내 준 유튜브 링크를 눌러봤다. 자가면역뇌염 연구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저명한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이순태 교수가 약 3년 전에 촬영한 9분짜리 유튜브 영상이었다. 자가면역뇌염의 주요 증상, 진단, 치료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기억력 급감, 경력 발작, 이상 행동이 주요 증상이라고 했다. 자가면역뇌염이 뇌질환 중에서 가장 중증 질환이라는 말도 잊지 않으면서 불안감으로 찰랑찰랑 가득 찬 유리잔에 물 몇 방울을 추가해표면 장력을 더해줬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일반적으로 병의 회복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기 전까지 나는 아내의 후유증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아내가 크게 호전이 되지 않으면 리툭시맙을 투여하면 된다고 하니, 최악의 경우가 오더라도 그 약으로 해결이 될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태 교수가 설명해 준 후유증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회복 후의 상태를 크게 세 개의 부류로 나눴다. 1/3은 치료에 잘 반응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고, 1/3은 부분적으로 호전이 되지만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하며, 나머지 1/3은 중증 장애를 갖게 된다고 했다. 중증 장애라니.
아내가 당연히 완전히 회복할 거로 생각했던 내게 장애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수치는 2/3가 최소한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수준의 회복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증 장애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고,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서도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만 계속 생겨났다.
딸은 엄마랑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건강한 모습의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4일 전에 본 아내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중증 장애를 가진 가족을 감당할 준비가 됐을까?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서울대학교병원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이보다 심란할 수 없었다.
H, E와 얘기하면서 마셨던 어마어마한 양의 제로 콜라와 함께 내 몸에 흡수된 카페인도 한몫했겠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노력해 봐도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억지로 자려고 눈을 감으면 두 단어만 머릿속을 격하게 맴돌았다. 중증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