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가고 싶다고 한 회전 초밥집은 가성비 좋은 식당이었다. 한 그릇에 1,200원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일반적인 회전 초밥집과는 다르게 한 접시에 초밥이 한 알씩 담겨 나왔다. 아빠는 회가 없는 달걀 초밥, 문어 초밥, 새우 초밥 정도만 먹는데 아들로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은 꽤 답답한 경험이었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손녀딸을 위해서 한 끼 식사를 포기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도 하면서도,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것보다 손녀가 먹고 싶다는 메뉴를 먹는 게 더 중요한 것이 할아버지의 마음인가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반면, 딸은 아빠보다 한술 더 떠서 달걀 초밥 두어 개만 먹고 후식을 먹겠다고 했다. 본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후식을 먹겠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만화에서 주인공이 고민할 때 천사와 악마가 튀어나와서 다투기 시작하는 것처럼 내 머리 위에는 두 명의 아빠가 등장했다. 둘 다 아빠인 것은 틀림없지만, 상반된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한 명은 딸의 평생을 함께 해왔던 아빠로서 조금의 강제성을 가하더라도 딸이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밀어붙이는 역할을 도맡아서 해왔다. 이 아빠를 아빠 1이라고 칭하겠다. 아빠 1은 평소에 딸 주위의 다른 어른들이 딸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바람에 딸이 새로운 것에 도전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아저씨다. 쓸데없는 사명감에 휩싸인 사람으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라고 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달걀 초밥 2개만 먹고 달콤한 푸딩을 먹겠다는 딸을 그냥 두고 봤을 리 없다. 바로 달걀 초밥이나 유부초밥을 더 가져와서 먹으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여태껏 나의 머릿속에는 아빠 1이 항상 패권을 쥐고 흔들었다.
그런데 오늘 난데없이 아빠 2가 득세했다. 아빠 2는 딸을 매우 안쓰러워하고 세상 불쌍한 존재라고 여겼다. 엄마가 얼마만큼 자리를 비울지, 돌아올 수는 있을지, 돌아오더라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르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는 딸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아빠 2는 딸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당장은 딸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평생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딸이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빠 2는 이내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아 한 번씩 괜히 자리를 비켜야 했다.
아빠 1과 아빠 2가 내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다투기 시작했다. 아빠 2는 항상 존재했지만, 전투력이 아빠 1에 한참 못 미쳐서 항상 짓밟혔었는데, 이제는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저력이 생겼다. 처음 겪는 저항에 적잖게 당황한 아빠 1은 쉽게 꺾였고, 아빠 2는 예상보다 쉬운 승리를 거뒀다. 그래도 아빠 1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기 위해서 승리를 쟁취한 아빠 2는 딸에게 유부초밥이나 달걀 초밥 하나 더 먹지 않겠냐고 권해봤다. 당연히 퇴짜를 맞은 아빠 2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면 먹고 싶은 거 먹어.”
다들 왜 그렇게 순순히 항복하는지 깨닫게 됐다. 너무 편했다. 내가 강제로 먹으라고 하지 않으니, 딸도 저항군으로 변할 필요가 없었고 기분 좋게 딸기 푸딩을 먹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딸과 다투는데 쓸데없이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됐고, 딸에게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됐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의 일부만 양보하고 포기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고 아빠 2가 성취감에 젖어있다기보다는 아빠 1이 이렇게도 힘을 잃었다는 점에 애석해하며, 승리를 마음껏 만끽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은 엄마를 만나지 못할 딸에게 이렇게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평화로운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아내가 있는 G병원으로 향했다.
아내가 입원한 G병원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병원이니까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나 또한 괜찮을 거라는 동의를 얻고 싶어서 엄마와 아빠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딸에게도 엄마가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행히 오기 전에 엄마를 실제로 볼 수 없다고 설명해 줬더니 딸이 엄마를 보여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딸이 엄마를 보고 싶다고 울거나 했으면 정말 난감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정말 고맙고 장했다. 병원 지하에 주차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3층 뇌혈관계 중환자실 앞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엄마는 여기 벽 너머에 누워 있어. 우리 가족이 바로 앞에 와서 응원해 주고 있으니까, 엄마도 힘내서 금방 나을 거야.”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딸도 내가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딸에게 거짓말이 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지양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금방 나을 거라는 거짓말과 함께 그저 응원해 주자는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내도 나도 딸에게 어떠한 약속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중환자실을 한참 쳐다보던 딸은 대뜸 물어봤다.
“엄마 죽는 거야?”
어른들이 생각하는 죽음의 무게보다 훨씬 가볍게 질문한 탓에 나를 포함한 어른들은 일제히 당황했다.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 함께 절대 죽지 않는다며 너나 할 것 없이 딸을 향해 손사래 치고 있었다. 오히려 딸이 당황한 어른 셋을 상대로 농담이라고 씩 웃으며 우리를 진정시켜 줬다. 딸은 과연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나도 내 생각을 모르겠는데, 딸은 오죽하겠는가. 아내는 정말로 죽음에 가까워진 걸까.
이후에 우리 가족은 특별한 말을 주고받지 않은 채로 10분가량 앉아 있었다. 엄마가 이 벽 너머에 있다고는 하지만, 직접 만나거나 볼 수 없어서 딸은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 담당 간호사를 괜히 호출해서 아내 상태를 확인했다.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었으나, 그 말은 거꾸로 아내가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 몸의 통제력을 잃은 채 있다는 방증으로 들렸다.
딸은 이내 지루하다고 해서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른들은 커피를 한 잔씩 주문했고 딸은 빵을 먹겠다고 했다. 나는 딸과 함께 빵을 고르는데, 딸은 대뜸 플레인 스콘을 먹겠다고 했다. 딸이 평소에 스콘처럼 푸석푸석한 빵은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른 부드러운 빵을 추천했다. 이 와중에도 딸은 고집을 부렸다. 나는 꾹 참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했다.
“너 어차피 이런 빵 안 먹잖아. 사면 꼭 다 먹어야 해!”
끝끝내 다 먹을 테니 사달라는 객기를 부리는 딸을 보면서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내가 아픈 것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고, 딸의 아빠이자 엄마 대리인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내야 했다. 스콘에 대한 딸의 고집은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갑자기 순순히 아빠 말을 잘 들을 것도 아니고, 내가 아내뿐만 아니라 딸도 열심히 돌봐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줬다. 역시나 딸은 푸석푸석한 스콘을 거의 먹지 않았고 스콘과 함께 나온 달콤한 딸기잼만 스콘에 묻혀서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회전 초밥집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봤던 아빠 1이 불쑥 튀어나왔다. 화내지 않았지만, 나의 표정과 말투에서 딸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문제는 우리 엄마도 눈치를 챘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빵에 크게 관심이 없었을 엄마는 딸이 내게 혼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는지 잽싸게 스콘을 먹기 시작했다. 딸과 앞으로 잘 지내고 싶은데 심히 걱정됐다. 앞으로 아빠 2가 아빠 1을 계속 이겨줘야 할 텐데. 세상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편부모들이 더욱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커피를 다 마신 우리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도 부산에 돌아가야 했고, 어차피 면회도 안 되는 중환자실 앞에서 계속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일 나와 아빠는 출근해야 하고 딸은 유치원에 가야 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복귀해야 할 일상이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아빠는 부산으로 향했고, 엄마, 딸 그리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서울에 남아서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내가 특별히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엄마가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 딸을 돌봐주기로 했다. 원래는 장모님과 교대로 딸과 우리 가족을 도와줬지만, 이제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일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줬다.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된 손녀딸도 안타까웠겠지만, 기약 없이 가족의 이모저모를 정신없이 챙겨야 할 처지에 놓인 아들이 불쌍해 보였던 것 같다.
나와 아내는 별도로 협의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나눠서 해왔다. 딸과 관련된 일은 아내가 도맡아서 하고, 그 외의 가전 기기 정비, A/S 업체 등의 외주 업체와의 연락, 자금 관리, 운전 등은 나의 몫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딸을 돌보지 않거나 아내가 내가 하는 일들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각자가 맡은 분야를 알아서 처리했었다. 아내가 없어진 지금은 평소에 아내가 하던 딸의 일들까지 내가 도맡아서 처리해야 했다. 엄마도 상당히 많이 도와주겠지만, 유치원, 학원, 딸 친구의 부모님들과의 연락은 이제 내가 도맡아서 해야 했다.
딸이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스트레스가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서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고 아내와는 어떠한 연락도 취할 수 없었기에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고, 시작도 하기 전에 놓칠 것에 대한 걱정만 늘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속상할 딸이 유치원 준비물을 놓칠까 봐 걱정됐다. 그래도 나는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앱을 핸드폰에 깔아놓고 알림은 받고 있었고, 그 앱에 접속하면 유치원의 일주일 치 준비물을 챙길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앱에서 다운로드한 다음 주 활동안을 토대로 나는 엄마와 함께 당장 내일 필요한 것들부터 챙겼다.
고맙게도 엄마는 주말 동안 정신없었던 나를 위해 딸을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재우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오겠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딸은 내가 재워야 한다며 강하게 저항했겠지만, 심신이 지쳐 있던 나는 내심 그렇게 해준다는 게 반가웠다. 딸에게 밝은 척하며 인사를 나눴고, 내일 아침에 보자며 헤어졌다. 아직 날은 쌀쌀했지만, 나는 오늘 처음 맞이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바람도 쐴 겸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러 내려갔다. 아내가 이렇게 되고 집에 혼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기만 했다. 딸이 없으니 당장 할 일이 없었고, 잠시 여유가 생기니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꼴사납게 아파트 산책로를 청승맞게 눈물 흘리면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한 번씩 오는 안부 통화 중에 울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겨우겨우 눈물을 삼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