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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Sep 03. 2024

5-1. 지독한 감기

새벽 4시쯤에 겨우 잠이 든 나는 3시간 정도 자고 출근하기 위해, 며칠 전 아내가 겨우 몸을 일으켰던 침대에서 똑같이 나왔다. 어제 집에 딸을 데리고 갔던 엄마도 손녀딸과 함께 일찍 와줬다. 나는 여느 평일처럼 출근할 준비를, 엄마와 딸은 유치원 등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만 집에 없었을 뿐. 어찌어찌 아침도 챙겨 먹고, 샤워도 해서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서려고 할 때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딸이 보이자, 부탁을 하나 하고 싶어졌다. 오늘 중환자실에 갈 때, 아내에게 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거절하던 딸에게 동영상을 찍어주면 엄마가 힘낼 것 같다고 했다. 딸은 전날 밤에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창하게 고민했던 내가 썼던 안경을 끼고는 장난스레 싫다고 하더니, 짧은 동영상 촬영에만 조건부로 동의하면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수줍게 전했다.


“사랑해요. 빨리 와. 보고 싶어. 끝~”


딸의 모습을 촬영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삽시간에 차올랐다. 기침감기 기운 때문에 쓰고 있던 마스크가 없었다면 딸에게 갑작스러운 눈물을 들킬 뻔했다. 아파서 누워 있는 엄마를 위해서 힘내라고 명랑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까 딸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분명 겉으로는 발랄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속이 쓰리기만 하고 잔뜩 심란해졌다. 딸이 최근 며칠간 특별한 내색을 하지 않아서 차라리 투정이라도 부려주길 바랐다. 울고불고 떼라도 쓰면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묵묵히 참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하게 잘 지내고 있는 딸의 속내를 도무지 알 길이 없어 갑갑했다. 굳이 아이가 속내를 밝히길 바라는 부모의 이기심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딸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게 아빠의 욕심이었다.


겨우 눈물을 참으며 집을 나섰으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물이 금세 다시 터져 나왔다. 엄마를 못 만나는 것은 당연하고, 전화나 영상 통화도 할 수 없는데, 어른들은 그저 엄마가 금방 나아서 집에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이야기만 했다. 이 말을 듣고 있는 딸의 마음이 과연 얼마나 불안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엄마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옆에 있는 아빠 생각을 먼저 해주는 딸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버스 타러 가는 길에 다시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 딸과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다시 또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한동안 마스크는 계속 쓰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우리 회사는 월요일 아침에 항상 주간 회의를 한다. 비록 4명이긴 하지만 지난주에 미처 서로에게 전달해 주지 못한 말들,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공유하기 위해 30분가량의 회의를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당연히 주요 어젠다는 업무 내용이지만 내가 주말에 우리 가족의 상황을 대표님과 J형에게 설명해 줬기에 이날만큼은 아내의 상황이 모두의 관심사였다. 대표님과 J형 앞에서 눈물을 질질 짜게 될까 봐 걱정하면서 입을 뗐는데 회사에서 윗사람들에게 보고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지 감정적인 동요는 별로 없었다. 일의 논리나 합리성이 중요한 분들이라서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되도록 나와 아내가 겪었던 일들의 전후 관계에 집중해서 설명해 줬다. 모두가 그렇듯 그들도 아내가 이렇게 된 원인을 궁금해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제공할 수 없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주중에 11:40~12:00에 단 20분만 가능했는데, 내가 그 시간에 병원에 다녀올 수 있도록 양해를 부탁드렸다. 다들 감사하게도 한동안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중환자실 면회였고, 회사에서 양해해 주지 않으면 마음 편히 다녀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면회하러 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내에게 20분간 격려의 말만 주야장천 해주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마저 놓칠 수 없었다.


G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기 전에 J형과 함께 같이 밖으로 나갔다. 평소 같으면 눈치를 살피면서 형이 나가자고 할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먼저 나가자고 부추겼다. 대표님과 함께 있을 때는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사실 위주로 서술했다면, 밖에 나가서는 주말에 있었던 나의 감정적인 동요와 함께 딸에게 어디까지 얘기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등을 토로하면서, 주말에 불안했던 마음을 아낌없이 토해냈다.  J형은 보통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성격인데 의외로 주말에 자가면역뇌염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다고 했다. 형이 본 많은 후기 중에서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소개해 줬다. 어떤 후기에서는 자가면역뇌염을 지독한 감기라고 했다고 했다. 당장은 좀 힘들겠지만, 일반적으로 2~3개월 안에는 반드시 나을 거라고 하면서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위로해 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11시 반 경에 중환자실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나는 회사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중환자실 면회는 1명만 가능해서 누가 들어갈지 정해야 했다. 장모님은 결정을 잘하지 못하는 성향이라서 내가 알아서 결정해야 했다. 병원에서 면회자가 한 번 정해지면 입원 기간에는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신중해야 했다. 물론, 누가 면회하냐에 따라 아내의 회복 정도에 영향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누가 아내의 회복에 방해가 되지 않을지 판단해야 했다. 어제 전화로 중환자실 간호사가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고 하긴 했지만 거의 이틀 동안 못 본 아내의 상태는 블랙박스였다.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상태를 장인어른이나 장모님께 보여주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나는 아내가 이렇게 되기 전부터 기침감기 기운이 조금 있었다. 며칠간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내 상태도 호전되지 않았다. G병원 홈페이지에 떡하니 감기, 인플루엔자, 결핵 등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은 면회가 거부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기침 때문에 면회가 거부되는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했기에, 회사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가래약 하나를 먹고 출발했다. 야속하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기침들을 어떻게든 숨겨야만 했다. 내 두 눈으로 직접 아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어떻게든 내가 아내에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위로를 전해야만 했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이틀 만에 뵌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나보다 더 무기력해 보였다. 아직도 아내가 이렇게 됐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도 똑같았고, 할 말이 없으면 그저 한숨만 쉬게 되는 것마저 비슷했다. 최대한 덤덤하게 면회는 내가 들어가겠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모르는 아내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고, 별다른 근거 없이 그냥 내가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장모님은 오히려 내가 볼 수 있는지 걱정했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나도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아내를 맞닥뜨리는 것이 걱정됐지만, 누군가는 들어가야 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보다는 내가 그나마 마음의 준비가 덜 필요한 것 같았다.


11시 30분쯤 되니, 뇌혈관계 중환자실 앞에서 보안 요원이 면회를 받을 준비를 했다. 그는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겠지만, 나는 처음 하는 면회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고 초보자 티를 내다가 실수해서 면회를 못 하게 될까 무척 초조했다. 마스크로 나만 알고 있는 기침감기를 최대한 숨기고, 면회 일지에 나의 이름과 연락처를 조심스레 기재했다. 손 소독제까지 바르면서 아내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고, 조금 기다리니 면회자들을 호출했다.


나는 잔뜩 긴장하며 중환자실 입구와 아내를 비롯한 환자들이 있는 구역 사이의 짧은 복도를 지나갔다. G병원의 중환자실은 M병원의 그것보다 훨씬 새것이었고, 조도가 너무 밝아서 낯선 느낌마저 있었다. 중환자실답게 각종 의료기기가 즐비했고,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 간호사들이 대부분 바쁜 호흡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동선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얼른 아내가 있는 방을 찾았다. 각 방은 자동문이 있어서 간호사들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과 분리되어 있었고, 조명도 환하게 환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들어가서 오른쪽 두 번째 방 입구에 2번 방이라는 팻말이 기재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아내의 이름이 비실명화되어 있었다. 2번 방의 자동문 뒤에 아내가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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