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등받이가 30도 정도 기울어진 병상에 상반신을 기댄 채로 나를 맞이했다. 간호사들이 묶어준 듯한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고, 머리카락들은 며칠째 감지 못해 잔뜩 뭉쳐 있었다. 나는 최대한 밝고 활기 넘치게 남편 왔다고 인사하면서 병실로 힘차게 걸어 들어갔는데, 아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내가 왔다고 크게 소리쳤으나, 아내의 눈은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고 눈꺼풀에는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입술은 아내가 주말 동안에 얼마나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아내는 이제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을 아예 잃었다.
나는 아내랑 대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하지 못해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아내에게 나의 당황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나의 감정적 동요를 숨겼고, 준비한 당부의 말들을 면접장에서의 자기소개처럼 영혼 없이 읊기 시작했다.
“밖의 일은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딸도 가족들도 내가 다 돌보고 있으니까 그런 거는 신경 쓰지 말고 버티기만 하면 돼. 의사 선생님이 그랬잖아? 무조건 회복은 된다니까, 그때까지만 열심히 버티면 되는 거야. 버티기만 하면 돼.”
이 말을 하고 나면 어렵게나마 아내와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의 말은 준비하지 않았었다. 다행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인지능력은 있는 것인지, 내가 하는 말들이 끝나면 거기에 겨우 반응하듯 옅은 신음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냥 나오는 것인지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맥락 없는 소리였다. 아내는 남편에게 인사하고 싶다는 듯 고개를 왼쪽으로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내가 몸의 통제력을 잃은 탓에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내가 오프닝 정도의 말만 준비한 탓에 면회 시작 1분 만에 할 말이 없어졌다. 특별히 생각나는 말은 없는데 조용히 있는 것은 내 말이 들릴지도 모르는 아내의 불안감만 가중시킬 것 같아 다른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농담할 기분도 아니었고 이 상황에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오프닝으로 준비했던 인사말을 조금씩 수정해서 반복했고 J형이 아침에 해줬던 말도 함께 해줬다. 침상 옆에 구부정하게 서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말만 수없이 되뇌며 이 지독한 감기가 얼른 낫기를 참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데 아내는 손에 힘을 주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힘내보겠다는 응답으로 여겼는데, 내가 하는 말들과 상관없는 주기로 쥐락펴락하는 것을 보고 이 역시 아내의 의지와 상관없는 동작임을 깨닫게 됐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아침에 촬영한 딸의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아내에게 딸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원래는 딸의 귀여운 모습도 보여주면서 힘내라고 하려고 했는데, 시각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청각적인 자극에만 희망을 걸어봤다.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내 마음속 좌절과 실망감이 극에 달했지만,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버티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지냈던 아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4일 전부터 면역 글로불린이 투약됐으니 지금쯤이면 차도가 있지 않을까 했던 마음속 기대감이 있던 자리가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듯 순식간에 좌절감으로 대체되었다. 내일 또 오겠다며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마음은 패잔병 같았지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의 속내를 내비칠 수 없었다. 상황이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는 말로 대략적인 상황을 브리핑해주고 직접 봤을 때 느껴졌던 아내의 몸에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알려줬다. 장모님은 연신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고 싶었으나 크게 대꾸할 힘도 없어서 듣고만 있었다. 새로운 담당의를 만나서 그가 판단하는 아내의 상황을 들어봐야 했다. 중환자실 간호사를 통해서 면담 신청을 했으나 담당의가 오전 외래 진료를 보는 탓에 만나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우리 셋은 병원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담당의가 외래 진료를 보고 있는 1층의 심장뇌혈관 진료실로 향했다. 넓은 복도의 양옆으로 10개 내외의 진료실이 있었고, 다양한 교수들의 이름과 사진이 각 진료실 앞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아내의 담당의는 가장 안쪽 방에 있었고, 진료 현황판 아래에 아내의 이름은 아직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 환자가 많았다.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넓은 복도 사이에 수많은 대기 벤치가 등을 대고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벤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담당의 면담을 기다리면서 벤치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 부부 나이대의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고령의 환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런 고령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아내보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이 직접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보다 아내가 훨씬 위급한데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긴 했으나, 시스템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
한편, 환자들의 끝없는 질문들에 지친 간호사들의 앙칼지고 날카로운 답변 사이로 위화감이 느껴지는 인물들을 발견했다. 힘없어 보이고 평상복을 입고 있는 환자들과는 다르게 정장을 입고 아이스커피가 3~4개씩 담겨 있는 캐리어나 먹을거리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월리처럼 숨어 있었다. 그들은 각자 겨냥하는 의사들의 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현황판에 해당 교수의 마지막 외래 진료 환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면 두 손 가득 준비했던 음식물을 든 채로 문을 최소한으로 열면서 구렁이처럼 부드럽게 들어간다. 간호사들이 밖에서 저지하거나 진료실 안에서 일종의 저항이 있을 줄 알았는데, 몸을 잔뜩 웅크린 인물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두 손이 가벼워진 월리들은 다시 슬그머니 방에서 빠져나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우리 가족은 아내의 생존을 두고 싸우고 있었지만, 이들도 나름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었다. 제약사 직원들이 각자가 대표하는 회사가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의약품이 처방되고 사용될 수 있도록 판촉 활동을 벌였던 것 같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에게 하루 중에 쉬어가는 시간인 점심시간에 의사들에게 각종 부탁을 하러 오는 이 월리들은 이상하리만큼 전부 소극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생존을 두고 각자의 싸움을 펼쳐지고 있었다.
월요일에 오전 외래 진료만 있었던 담당의는 오후 1시가 되도록 진료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을 겨우 숨기며 우리 차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진료 시간까지 넘어간 오전 진료 덕분에 담당의가 다른 방으로 옮겨야 했고, 우리는 거의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그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렇게도 의사와의 만남의 반갑다는 게 모순 같았다. 나와 장모님만 담당의의 설명을 듣기로 했으며, 설명을 듣다 보니 앞의 진료들이 왜 계속 지연됐는지 알게 되었다. 담당의는 성심성의껏 아내의 상태를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우리에게 전달해 주느라 기나긴 설명을 해줬다. 앞의 환자들에게도 이렇게 했을 것으로 생각됐다. 문제는 그 설명을 듣고 있는 내가 사전에 알고 있는 거라고는 아내의 진단명과 기본적인 증상 그리고 면역 글로불린, 리툭시맙이라는 약 이름 정도였다. 담당의가 열심히 설명해 주는 내용을 내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조금 더 이해도가 높아서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극심한 정보 비대칭을 절실하게 체감하는 데 그쳤다. 그래도 담당의의 설명을 최대한 열심히 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의 설명 중에서 내가 이해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아내의 병은 높은 확률로 자가면역뇌염이며, 길랭-바레 증후군 사촌(변이 정도로 자체 해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M병원에서 촬영한 MRI 상에는 확인되지 않지만, 뇌간 손상이 추정됨
내일까지 면역 글로불린 투약을 완료하고 경과를 지켜봐야 하며, 스테로이드나 리툭시맙 투약은 경과를 보고 판단할 예정
장모님은 무조건적인 리툭시맙 투약을 요청했다. 나는 담당의가 한 말을 즉시 반박하는 내용이라 조심스러웠으나, 동시에 실제로 리툭시맙을 투약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서 아무 말 없이 담당의의 얼굴만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담당의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리툭시맙처럼 면역 체계를 강하게 무너뜨리는 약을 투약하는 것은 아내의 건강 상태를 크게 악화시킨다는 답변이었다. 리툭시맙이 투약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으면 담당의도 바로 돌입했을 거라는 점을 감안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담당의의 설명이 다 끝난 이후의 Q&A 시간에 결국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당연히 확답을 주기 힘드시겠지만,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고 봐야 할까요?”
“결국 환자분의 신경들에 상처가 난 상황인데 이 상처들이 어떻게 아물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지금 상태가 계속 악화가 될지, 회복이 될지 보면서 바닥을 확인해야 합니다.”
담당의는 일상생활로의 회복에 대한 확답을 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현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내 입장에서 참담한 이야기들을 몇 가지 해줬다. 아내는 안면마비가 많이 진행됐고 우측 다리에 마비 증세까지 왔다고 했다. 담당의는 당연히 희망적인 말만 해주지 못하는 입장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하반신 마비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젯밤에 봤던 유튜브에서 들었던 중증 장애까지 떠올라 온몸이 마비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의 유튜브를 보기 전까지는 아내가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하니 웬만해선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할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는데, 담당의의 말과 직접 확인한 아내의 상태를 본 이후에 내 머릿속에 이제 완전한 회복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점점 우리 가족의 미래에 잿빛 구름이 몰려들고 있는 듯했다.
더 이상 합리적인 사고가 힘들어진 나는 내일 오겠다는 말과 담당의에게 아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며 장모님을 모시고 진료실을 나왔다. 담당 간호사가 내게 각종 검사 동의 서류들을 들이댔고 나는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해달라고 하면서 필요한 곳에 서명을 갈겨댔다. 신속하게 필요한 절차들을 끝내고 좌절과 혼란에 지배당한 나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에게 특별한 얘기를 하지 못하고 먼저 가겠다고 했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알아차린 건지, 장모님은 본인도 절망스럽고 힘들 텐데 내게 먼저 “힘내”라고 당부해 주면서 살포시 안아줬다. 순식간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 나는 회사에 얼른 들어가야 한다고 하며 황급히 돌아서서 나왔다. 하마터면 눈물을 들킬 뻔했다. 돌아서자마자 거짓말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90년대 뮤직비디오의 실연당한 주인공처럼 눈물을 콸콸 쏟으며 병원을 빠져나갔다.
부리나케 나온 나는 흐느끼며 구석으로 숨었다. 머리에 두 가지 개념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반신 마비, 중증 장애. 정말로 아내의 척추와 하반신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이대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운명이 되는 건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중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면 아내도 너무 불쌍하기도 하지만, 내가 평생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 인지 능력이 있는 것 같은 것에 안심해야 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전문 지식 없는 나만의 상상은 내 머릿속의 우리 가족을 점점 나락으로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