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블리 Feb 07. 2017

#. 3년차 슬럼프

"3년차 슬럼프를 겪는것 같아"
동기가 점심을 먹다말고 툭 말을 던진다.

요즘 하는 업무에 자꾸 회의감이 든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업무로는 전문성도 쌓을 수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다고. 회사 선배들을 만나도 미래를 제시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들을 닮고 싶지도 않다고. 일로써 성취감을 얻는다는게 가능이나 한 것이냐고.

동기의 한숨 섞인 푸념을 듣는데 입사 1년차의 내가 생각이 났다. 남들은 3년은 되야 슬럼프가 온다는데, 난 겨우 입사 첫 해에 슬럼프가 왔기 때문이다.



 입사 첫해에 내가 했던 일은 부서의 각종 잡일 담당이었다. 선배들의 법인카드 영수증 처리, 회식장소 및 워크숍 준비, 각종 회의록 및 업무보고 취합 등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몸은 바빴지만 부서일에 특별히 기여하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날 더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 혹시 전문성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주어진걸까?
- 대학 다닐 때 자격증을 땄어야 하는건데..
- 선배들은 후배가 잡일을 맡는 것을 방관할까

가끔은 우울했고 가끔은 불만을 토로했다. 가끔은 대학원에 가거나 자기계발을 할까 고민했고 또 가끔은 회사의 운영방식에 불만을 제기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때, 부서일에 적응하고 부서사람들에게 적응했을 때, 내겐 좀 더 다른 영역이 생겼다. 팀장님께 건의해서 고유업무를 맡았다. 부서를 대표해서 글을 쓰는 기회도 생겼다. 좀 더 일다운 일이 늘어났다.

그 해 5월, 다음 부서로 발령이 났다. 신기하게도 다음 부서에서는 전에 하던 잡일이 엄청 큰 도움이 되었다. 뒤치닥거리를 하려면 회사의 모든 업무를 모두 알아야했기에, 회사 전반적인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했던 것이다.

다음 부서에서 내 역할도 조금은 커졌다.

미생에서 현장을 알아야 한다고 부르짖던 한석율씨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입사 3년차,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물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너무 오래 산다. 그리고 회사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고로 앞으로 우리가 전문성을 어떻게 쌓아나갈 것인지, 내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자기계발은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하는 업무가 탐탁치 않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하는 모든 경험 중에 쓸데 없는 것은 없다.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어떻게서든 내게 도움이 된다. 힘들다고 하찮다고 멀리하면 그것은 미래의 기회를 내가 차버리는 꼴이 된다.

만약 지금 미약한 일을 맡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미약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아직 그와 관련된 경험이 충분이 쌓아지지 않아서,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잘 여물 때를 기다리는 곡식처럼.

세상에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일상을 성실히 쌓았을 때 특별한 미래가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by.쏘블리

매거진의 이전글 #. 협상을 경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