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할아버지의 동거인
할아버지의 동거인
엄마가 어릴 때
엄마의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큰 이유는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정확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막내를 낳고 산후우울증처럼 오셨던 것 아닐까?
엄마의 막냇동생은
멀리 시골 친척집에서 몇 해를 자랐다고 했다.
그 사이 이혼은 진행됐고
엄마의 친엄마는 그 뒤로 엄마의 인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의붓어머니가 자식 둘을 데리고 와서 재혼하셨다.
초등 저학년이었던 그녀를 식모살이시키듯
제 집에서 들들 볶았었나 보다.
뽀얗고 작던 어린아이의 손이 벌겋게 터질 만큼
겨울의 차가운 물에도 멈추지 못하고 손빨래를 했다.
어디선가 굴러온 의붓 오빠, 의붓 언니의 빨래와
다섯 친남매의 빨래를 혼자 감당했다.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들은 고생시킬 수 없어
혼자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썼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자유의 찬란함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덜컥 나를 가졌다.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에게 나는 짐스러운 존재였을 거다.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는 사실은 10대 때부터도 알고 있었다.
공무적인 이유로 초본을 떼보고서야 처음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동거인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할아버지의 '동거인'으로 출생신고를 하기까지의
기구한 사연은 말을 듣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일반적인 사람의 초본은
세대주와의 관계가 'OOO의 자녀'로 기재된다.
이사 몇 번 다닌 흔적 정도가 전부고 대체적으로 깔끔하다.
이후에도 나는 몇 년을 '할아버지의 동거인'으로 살다가
'엄마의 동거인'으로 엄마와 함께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요즘에도 쉽지 않은 일일터.
80년대에 서류상 미혼모로 사는 것이 얼마나 녹록지 않았을까.
'자신의 친엄마처럼 자식을 버리지 않을 거다.
어떻게든 옆에서 편이 되어줄 거다.'라고.
고작 23살이던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찌 저지 그들은 몇 해가 지나 살림을 합친 듯하다.
사랑으로 시작해도,
경제력으로 버텨도,
삶이 충분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쉽지 않다.
내내 팍팍한 삶을 살았지만
엄마는 어렸고 소녀 같았다.
반면
아빠는 자신의 부모 형제에게는
가족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살았지만 마음대로 살고 철없었다.
나라는 존재가 억지로 옥죈
그 둘의 사이는 제대로 합이 맞았던 적이 없고,
삐그덕 거리기 십상이었다.
언제고, 더 빨리 헤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부부사이였다.
지금의 내 삶은
악착같이 나를 포기하지 않던 20대의 엄마 위에 서 있다.
그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