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한 발짝 뒤로 물러나기로 했던 나의 선택
결정을 존중해. 엄마 인생이잖아.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인생이 참 피곤했던 때가 있다.
내 나이 열일곱.
인생이 나를 시험하던 시절이었다.
사춘기라서 힘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시절은, 그 말로는 부족했다.
학교에서는 일진무리에게 얻어맞았다.
겨우 회복될 즈음, 친구에게 다시 맞았다.
연애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관계에서
상대는 내 친구였던 아이와 바람이 났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자기 삶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터였다.
나와 타자의 관계는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던 시기였다.
나는 그럴수록 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사람은 왜 태어나나.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신이 있다면, 인간을 왜 이렇게 버려두는가.
그때 (내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사이가 좋았던 적 없던)
부모님이 이혼하겠다고 했다.
이혼은 하되, 서류정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혹여 미래의 나에게 해가 될까 봐 그렇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언급했던 저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필요성도 못 느꼈을 거고 서류상의 부부라도 유지하는 게
더 메리트가 있으니 그랬겠지.' 싶기도 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
이혼을 코앞에 앞둔 부모를 둔 자녀라면
누구나 받았을 질문들을 나도 받았다.
'왜 물어볼까? 어차피 자기들 마음대로 할 것을.'
결정을 존중해.
엄마 인생이잖아.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당시의 나에게 아빠는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악마 같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엄마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
가정을 망가트린 사람.
수십년이 훌쩍 지나고
나도 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알았다.
일이 그렇게 흘러간 데에는
각자의 몫이 있었다는 걸.
결국 똑같으니 일이 그렇게 흘러간 게다.
(물론 예외적으로 아닌 케이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듯, 나역시 알고있다.)
누군가 조금 더 지혜로웠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조금 더 단단했다면
버텨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불행을 온전히 아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걸 뒤늦게야 이해했다.
(물론 아빠의 불행도 본인이 만든거다)
나는 나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며
한 발짝 떨어 있던 사람.
그게 나였다.
결국 누구 하나 더 나은 사람,
더 많이 부족한 사람 없이.
지구상에 달랑 셋 있던 가족인 우리는
안타깝게도 똑같이 졸우(拙愚)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