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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JI May 02. 2024

내면 아이에게 보내는 그림책 <나에게 해주는 멋진 말>

마음속 가해자와 살아가는 나에게

생존은 크게 몸의 생존과 마음의 생존으로 나뉜다. 몸을 지키기 위해선 먹고 자고 운동을 하듯이 자신의 마음을 위해 알아야 할 멋진 말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말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집중해서 보아야 할 면은 좋은 말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란 거다.


내 안에 내, 외부적 요인으로 생긴 부정적 에너지나 가해자가 하는 말들에 먹이를 주지 말고, 긍정적 에너지로 환원할 수 있는 말들을 알려주고 있다.


폭력이 무서운 건 당장 눈에 보이는 외상은 차치하고, 마음과 정신을 박살 낸 것도 뒷순위로 미루고. 피해자 안에 지독한 가해자를 만든다. 그 가해자는 ‘나’이지만 ‘내 편’이 아니야. 내 안의 가해자와 끝 모를 싸움을 한다.


아무리 짓밟아도 고개를 드는 내 안의 가해자가 언제 어디서 눈을 휘 번뜩거리며 거리며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그럴 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다시 고통받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또 씹히고 짓밟힌다. 이게 몇 번, 혹은 몇십 번. 횟수가 아니라면 기간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기약도 없이 계속된다.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끝날지 알 수 없다. 몸의 상처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회복된다.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걸릴 뿐 일정 수준까지는 회복되지만, 피해자 안에 뿌리 깊게 박힌 가해자를 쫓아내기가 쉽지 않다.



수전 베르데 글 / 피터 H. 레이놀즈 그림 / 김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나를 산산조각내면 이 화가 풀릴까?

나를 갈기갈기 찢으면 이 억울함이 사라질까?

나를 차가운 물에라도 가라앉히면 이 분함이 옅어질까?     


이런 방식들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고요한 감정의 소멸보다는 폭발적인 자멸. 내 안의 가해자를 끌어안고 함께 끝. 이런 방식이 빠른 고요와 편안함을 가져다 주리라 깊게 심취한 적도 있다. 내 머릿속 가해자의 목소리에 집중해 버린 거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가해자에게 흔들리게 두면 안 된다.

   

일단 숨어. 몸도 마음도 네가 안전하다고 믿는 곳으로 최대한 숨어. 아무것도 하지 마. 그저 너의 생존에만 집중해. 그걸로 충분하다. 안전하다고 믿는 너만의 벙커에 들어왔다면 너와 관련된 부정적이고 폭발적인 감정이 치솟아도 다시 흘려버릴 수 있다. 분노가 수억 번 치솟아도 네 벙커를 불태울 순 없다. 너는 안전하다.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서) 관두고, 내 방 안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할 때에 (당시에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내 방은 '내 방' 그 이상의 가치였다. 거듭 얘기하게 되지만, 나는 그 방이 벙커 같기도 하고, 잠수정 같았다. 그 잠수정 안에서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시간들을 보냈다. 내 안의 여러 자아들과 또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내 머릿속 가해자와 함께였으니까. 차라리 나도 같이 때려볼걸. 때릴 용기가 없어도 소리라도 꽥 질러볼걸. 병신이다. 병신이야.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커져 올 때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나로 충분하다고, 나라서 소중하다고 알게 된 건 훨씬 더 훗날의 이야기.



아직 그 시간에 머물러 자책하고 있을 수십 년 전 나에게.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을 꾸역꾸역 헤쳐가고 있을 너에게. 이 그림책의 온기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너를 사랑하고 아끼는 말들로 네가 가득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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