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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JI May 09. 2024

내면 아이에게 보내는 그림책 <까마귀 소년>

내 유년 시절 단 한 명의 스승을 기억하며.

우리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3월에 태어난 나를 무려 벌금까지 내가며 1월로 호적을 올린 탓에 학교를 한 학년 일찍 들어갔다. (엄마가 알고 행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 결정적으로 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1년의 세월을 벌 수 있었다)     



1년이나 학교를 빨리 가도 석박사까지 마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다지만 나는 평범보다 조금 부족한 아이였다. 키도 반에서 제일 작고, 수시로 아프고,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구구단 외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초등 저학년까지 꼬박 듣던 장미반(지금으로 치면 학습 부진으로 인한 반올림 반) 수업은 예나 지금이나 잠 많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정이었을 거다.     


야시마 타로 글, 그림 / 윤구병 옮김 / 비룡소

초등 2학년. 단칸방에서 드디어 방이 3개나 있는 집으로. 화장실이 무려 집 안에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학교도 옮기게 됐다. 담임 선생님은 학기 중 전학을 보낸 주제에 조공하러 오지 않는 엄마를 못마땅히 여겼는지 사사건건 나의 행동을 트집 잡으셨다. 어떤 이유로 트집을 잡았던 건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엉엉 울며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장면이 단편적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그 짧은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 앞자리에 반장 아이가 앉았다. 수업 시간 선생님이 판서 중이실 때 갑자기 뒤를 획 돌더니 내 필통을 뒤집어 안에 있는 필기구를 와르르 쏟아붓고는 반듯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도 좀 맹한데, 그땐 오죽 맹했을까. 약간 울먹이며 필기구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어느새 코앞까지 오셨다. 수업 시간인데 필통 정리나하고 있다고 나를 꾸짖으셨다. 뒤로 가서 손 들고 서 있으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 못 하고 뒤에 서서 양손을 들었다. 부끄러웠다. 반장이던 고 녀석이 뒤돌아 나를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더니 메롱하고 다시 앞을 바라본다.    

 

내 별명도 땅꼬마였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 부리는 게 엄마의 고민이었을 게다. 엄마가 지인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니, “꽃다발에 돈봉투를 넣어서 찾아뵈어야지 뭣 하고 있었냐?”며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 본인도 받아본 적 없을.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본 꽃바구니 중 가장 큰 꽃바구니에 흰 봉투를 꽂아서 낑낑거리며 내 등굣길에 함께 했다. 엄마는 곧장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이유도 모른 채 엄마가 고개를 누르면 옆에서 같이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그 뒤로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혼내지 않았다.     


3학년은 달랐다. 은혜로운 단비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학령기에 만난 그 어느 선생님에 대해서도 믿음이나 환상 같은 건 없고, 신뢰도가 낮다. 학업을 중단한 사람이니 오죽할까. 하지만 3학년 담임 선생님만큼은 아직도 성함도 기억나고 어렴풋이 얼굴도 떠오른다.      


학교에 있을 때면 좌불안석. 내 자리가 아닌 것 같고, 수업 내용은 ‘하나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한없이 인자하게 대해주시던 선생님. 용기 없어 뒷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으면 늘 한 번 더 권해주시고 챙겨주시던 선생님. 공부도 못하고, 특별히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나에게 늘 먼저 기회를 주셨던 선생님. 그 덕에 초등학교 3학년 시절만큼은 여전히 가슴에서 반짝인다.  

    

학년이 끝나고 헤어질 무렵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의 4년이 끝나 전근을 가신다고 했다. 반 아이들 손을 꼭 잡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진심 어린 기도를 해주셨다. 끝끝내 눈물을 보이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감사함으로 남아있다.     


마치 만화처럼 “그 뒤로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잘 다녔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이면 좋았겠지만, 꾸준히 느린 학습자로 어영부영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도 별 달라짐이 없었고, 고등학교는 제대로 졸업조차 못하고 끝났다.     


키라도 훌쩍 컸다면 좋았을까? 여전히 작고 잔병치레도 잦다. 그러면 뭐 어떠냐. 분기별로 입원하는 일이 잦아 출석 일수가 부족한 탓에 병원에 있던 나 대신 이모가 대리 출석을 해주던 그 꼬마가. 엄마 아빠 안색 살피느라 늘 집에서 쥐 죽은 듯 지내던 그 중학생이. 학교폭력에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학업을 포기했던 그 고등학생이.     


살아남아 건강히 어른이 되었다. 마흔, 이제야 사는 재미를 알게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보다 더 좋은 것 아닐까? 해피 ING니까.     

땅꼬마가 까마둥이로 바뀌는 마법은 누가 부렸을까?

전 생애에 걸쳐 무조건 12번 만나게 되는 스승은 아이들에게 이토록 중요하다. 모든 아이가 정말 좋은 스승만 만날 수 있기를. 모든 선생님이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혹여 단 한 명의 스승도 만나지 못한대도 괜찮다. 네 인생에 누구보다 좋은 스승은 네가 겪는 그 모든 슬픔과 시련, 행복과 사랑, 감사이기도 하다. 살아만 있는다면 언제고 좋은 기억으로 너를 채울 수 있으니까. 네 삶이 계속되길 바라며. 좋은 스승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스승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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