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무겁다면, 그 마음은 내 안에 조용히 가라앉혀 두는 것이 상대를 정말 소중히 여기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가볍고 편안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개인적으로 자신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깨우친 바가 있다면, 자신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그 상대에게 실제 의사를 주고받은 것 이상으로 더 큰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다. 상대 덕분에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나의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고 느끼며,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상대의 작은 호의조차 더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어디까지나 내가 혼자 키워온 마음이다. 상대는 그저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을 뿐이다. 상대에 대한 고마움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단지 본능에 따라 그 마음의 일부를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전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그 태도조차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사람은 가벼운 대화에서도 많은 고마움을 나눌 수 있기에, 상대는 이미 자신만의 기준에서 내가 보인 고마움을 편안히 받아들였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그동안 상대에게 품은 마음의 깊이를 망각한 채 너무 무심히 그 마음의 일부를 내비치면, 상대는 그 갑작스러운 무거운 마음에 감정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깊은 마음에는 깊은 감정이 포함될 수밖에 없고, 그 감정이 아무리 순수하다고 해도 타인에게는 감정적 책임을 지게 하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다. 아무리 편안한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눈 감정이라도, 때로는 상대에게 폭력적인 의사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정말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면, 나의 순수한 마음은 내 안에 있을 때만 순수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되새기며, 내가 아닌 상대의 마음이 편하도록 대하는 것이 결국 더 나은 관계를 향한 길일 수 있다.
물론, 상대는 내가 일상에서 가볍게 전한 마음에는 별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내가 상대에게 받은 고마움 일부를 전하려는 과정 일체가 상대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따라서 직접 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평소에 조금 더 부드러운 어휘로 대화하는 게 올바른 선택일 수 있다. 또한 함께하는 시간 동안 변치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두 사람만의 시간 속에서 상대는 긴 세월 동안 아주 서서히 다가올 수도 있고, 자신에게 놓인 현실에 집중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다. 내가 정말 상대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한결같은 마음을 보이며 내게 다가온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만약에 그 관계가 길게 이어진다면, 비록 지금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더라도 이미 서로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호감을 키우며 감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에는 이 정도의 거리감이 최선이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밀한 면까지 아끼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에는 더욱 조심해야 할 수도 있다. 서로 격렬한 애정이 뒤섞이는 시기에는 마음속에 커지는 사랑을 나눠간다고 해도 행복만 깊어질 뿐이지만, 사랑의 격류가 잦아들며 상대에 대한 현실적인 감정 층위가 더욱 깊어지는 시기에는 나의 사랑이 때로는 연인에게 피로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 깊은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기감정에 몰입하며 말로 표현하는 사람과 내면의 감수성이 아주 깊지 않지만, 말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한 행동에 몰입하는 사람이 사랑한다면, 이 사랑의 비대칭 속에서 서로의 사랑에 어느 순간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자기감정에 더 몰입하는 사람은,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점점 더 깊어지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과하게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연인에게 감정적 피로를 유발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외부적으로 애쓰는 사람은 상대의 외적인 표현에 부족함을 느끼고 자신이 더 많이 사랑한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무척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기 마음에 몰입하는 사람은 그 마음을 전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돌아봐야 한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자신만 느끼는 감정이기에 그 마음이 같지 않은 상대에게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보다는, 눈에 직접 드러나 두 사람 모두 정확히 느낄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둘을 위하는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사랑이 완벽히 대칭일 수는 없으니, 서로 다른 마음을 현실적으로 맞춰 가는 게 결국 함께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나는 내게 고마운 사람에게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애착을 계속해서 드러내 보일 수 없다. 내 마음의 깊이는 친구나 연인 모두에게 관계의 틀을 깨뜨리는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이미 나에게 호의를 가진 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알아주지 않아서 좋다. 가벼운 일상에서 마음을 나누는 순간, 그 작은 느낌만으로 충분하다. 내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고 상대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오지 않다고 해도, 일상의 찰나에 나눈 느낌이 나를 깨우치는 마음으로써 내게 나타난 순간 이미 상대에게 마음을 전해 받은 것이 아닐까. 나만의 마음이지만, 나로부터 이어진 상대에게서 전해 받은 단 하나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전하지 못하는 슬픔과 쓸쓸함은 내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것이니, 겉으로는 상대가 바란다고 여겨지는 그 정도의 기쁨만 나누면 된다. 아무도 모르는 들판에 핀 꽃이 예쁘듯이, 아무도 모르는 나의 미소도 예쁜 것이겠지.
어쩌면 본능에 따라 나의 순수한 사랑을 모두 쏟아내고, 그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자아가 형성되기 전의 자식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그 마음의 결을 타인과 공유하는 느낌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단지 내가 느끼는 나만의 세계에 만족하며 살면 될 뿐이다. 혼자서, 나를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비춰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품고, 나에게 무한한 마음을 전해오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서 더욱 깊이 키워갈 뿐이다. 쓸쓸함은 감추고, 기쁨만을 내보이며,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천천히, 마음을 다듬는 삶이다.
2025년 0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