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에서 혼자로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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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하다. 그러나 가끔, 감정의 물결이 미동 없이 가라앉으며 일순간에 깊은 고요가 밀려올 때면 긴 정적 속에서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고독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감정의 벽 너머, 정서적 진공에 가까워지지만, 감정이 진정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듯 마음속 소음 또한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긴 정적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단 한 가닥의 소음이라도 울리는 듯하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긴다. 그러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세상에 단절된 고독감에 짓눌려 누군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 착란을 일으킨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가 있었지만, 감정이 너무 깊이 가라앉아, 그 상대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확신을 얻어 현재의 고독에 만족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고독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정서적 고요 속에서 고독을 바라본들 스스로 더 깊은 고독에 묻혀갈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본능에 따라 자신의 기질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고독을 잊으려 한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득이 되는 가치에 몰입하여 경제적 안정을 얻거나, 사회적 실익이 미미하더라도 스스로 느끼기에 자기 내면에 득이 되는 취미에 몰입하여 평온한 마음을 얻으려 한다. 다른 누군가는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필요에 따라 관계를 조율하는 데서 통제 욕구를 충족하고, 자기 정체성의 확장을 경험하며 내적 안정을 얻거나, 소수와의 관계에 몰입하는 데서 정서적 유대를 갈망하는 자기감정의 진실함을 바라보며 내적 만족을 얻으려 한다. 본능에 따라 가족이나 자녀에 몰입하여 그 원초적 욕구의 순수함을 충족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려 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인정하는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현실이 아닌 고독을 보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만족을 찾아가고, 성취를 좇는 삶에 지치거나 속을 알 수 없는 관계에서 혼란을 겪는다 해도 제 역할에 충실하여 상황을 극복해 간다. 하지만 나는 긴 세월 동안 나를 깨우치고 사회가 제시한 성숙한 삶을 가꿔가는 과정에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만이 언제나 내 곁에 머문다는 것을 깨닫고, 관계의 연결성과 지속성에 만족하기 위해 고독을 바라보는 선택을 했다. 사랑의 격류를 지나 무결한 사랑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와중에도 마음의 벽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고독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제는 고독과 함께하는 행복을 그린다. 어쩌면 고독이 머문 고요한 적막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고요한 행복을 향한 길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마저 가엽게 여기고 다가오는 죽음을 마중 나가는 삶이, 존재론적 고독을 알아버린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한다.


나는 오늘도 텅 빈 곳을 돌아본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감정에 짓눌린 채 슬픔에 미소 짓고 행복에 눈물짓지만, 이 세상에 나고 지는 한 사람의 얼굴이다. 사실 그 가면 안에는 슬픔에 눌린 얼굴만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 찡긋 웃는 표정을 억지로 구겼다 펴면 될 뿐이다. 어차피 보는 사람은 없다.


2024년 08월 31일

2025년 0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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