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수아비, 너는 바람

by 응시하는사람
num52_metaphor_1.jpg


바람이 불어와 나를 흔들면서 지나간다. 언제 다가올지,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나를 흔들고, 그렇게 내가 흔들릴 때면 마치 맥박이 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나는 어느 밭을 지키는 허수아비다. 날아오는 조류들로부터 황금빛 곡식을 지킨다. 그러나 정작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색한 표정과 자세로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단지 바람이 불 때면 내가 흔들거려 새들도 좀 더 눈치 보는 듯하고, 밀밭도 춤을 추니 그 순간의 풍경이 조금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바람을 기다린다. 그 바람을 갈망한다. 실제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고, 나를 흔들지만, 금세 지나가 버린다. 솔직히 그 바람이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만, 한곳에 머무는 바람이 없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계속 불어오면 조류들은 덜 신경 쓰이겠지만, 곡식도 상하고, 나 역시 서서히 마모되어 갈 것이다. 나에게만 형편 좋게 머물 바람은 없다.


나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고, 바람은 늘 그런 나를 지나간다. 그 지나간 바람이 한참을 돌고 돌아 내게 다시 불어올지도 모르지만, 또 금세 지나가겠지. 이 세계에서는 내가 지키는 황금빛 곡식만이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물 뿐이다. 그래, 나는 밭을 지키는 존재이고, 바람은 지나갈 뿐인 존재이지. 내가 이렇게 내뱉는 말도 지나간 바람은 들을 수 없다. 사실, 나는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인 허수아비니까.


2025년 05월 11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구름 한 점의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