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원치 않는 영향력으로부터 마음을 지킬 수 있고, 그렇게 아낀 마음을 원하는 사람에게 베풀며 만족할 수 있다.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가 있다고 해도, 그 고마움을 담아둘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그 사람이 내게 쏟은 시간과 마음은 내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나도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고 있기에, 내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의 관심은 부담이다. 사람마다 바라는 대상이 다르고, 수용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의 깊이도 다르다. 일방통행의 관계로 가득한 사회이다 보니, 종종 서로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마음은 비슷해질 수 없기에 무의식 중에 기대와 실망을 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할애할 대상과 크기도 바뀐다. 내게 고마운 사람은 내게 마음을 보이려 하고, 나는 그 마음을 흘러가게 둔다.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보이지만, 그 마음 또한 대개 닿지 않는다.
일방적인 관계가 인생 전반에 걸쳐 반복되다 보면 정서적 피로감이 깊어질 수 있다. 이기적으로 마음을 지켜온 끝에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얻어도, 정작 내가 바란 사람이 아니면 도리어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순간, 단 하나의 대상에게 모든 감정을 쏟고 싶어진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가장 고마운 사람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는다. 또는 일이나 취미에 기댈 수도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회 속에서 계속 일방적인 마음을 건네다 보면, 남아 있던 정서적 공간마저 서서히 닫히게 된다. 정서적 공간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도 모른 채, 사소한 마음 하나에도 묘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은 언젠가 자기 삶을 위해 떠난다. 가족도, 고마웠던 사람도 떠나기 마련이다.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몰입해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 남는 건 감정의 공백뿐이다.
오랫동안 쏟은 애정의 빈 자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그 대상만 바라보며 눌러온 울분이 마음 깊이 스며들면, 지금껏 버텨온 정서적 균형이 무너진다. 단지 힘껏 살아온 삶을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서서히, 그러다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이기적으로 변하기 쉽다. 상대에게 내 이야기만을 쏟아내고, 억지를 부리고, 권위를 내세우고, 통제하려 들 수 있다. 그 옹졸해진 가슴으로 내게 닥쳐오는 외로움이나 무력함을 외면하기 위해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그 시절,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이렇다는 현실을 그저 외면하고 싶을 수 있다. 심신이 병드는 시기다 보니, 정서적 회복을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시간도, 돈도, 지식도 무너진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다. 결국, 감당하지 못한 마음을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주길 바라게 된다.
그저 사람답게 살았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비참한 현실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단지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내선 안 된다. 마음이 무뎌지기 전에 스스로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조용히 돌봐야 한다. 누군가 고마움을 전해와도 할애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그 순간에 조용히 예의를 지키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된다. 마음이 닿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책임지려 애쓸 필요는 없다.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기대 없이 품을 수 있는 마음만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마음으로 흘러오는 결을 모두 차단해서도 안 된다. 내 마음을 한 대상에게만 모두 쏟아서도 안 된다. 이기적이되 냉랭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나여서 가능한 태도일 수도 있다. 나는 부서진 마음의 구조를 애써 다시 붙잡아 두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에서야 별일 아니라고 여길 수는 있지만, 부서진 마음이 부서지지 않았던 것처럼 될 수는 없다. 그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 틈에서 텅 빈 고요를 살고 있다. 울분은 말라붙었다.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기에, 나는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책임 지우지 않는다. 주고 싶어서 주고, 받지 못해도 미소 짓는다. 이 부담스러운 마음은 이해받을 수 없고, 늘 가로막힐 뿐이지만, 나를 지키는 이기심이기에 놓을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덜 후회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2025년 0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