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기에 무해한 삶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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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숨을 내쉴 때마다 자신만의 생명의 결이 울리고 주위로 퍼져 그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지만, 결코 특정할 수는 없는 기류가 일어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돌릴 때, 그 사람을 담은 이미지, 혹은 남긴 문장을 볼 때조차 고유한 결의 깊이가 느껴지곤 한다. 나는 그 알 수 없음을 눈앞에서든, 내면에서든,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깊이를 찾고 나의 깊이를 돌이켜 본다. 각자의 타고난 기질과 삶 속에서 만들어진 성향이 다르고, 감정이 스며드는 방식 또한 다를 수 있지만, 그 깊이가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면 나는 그 사람에게서 더 깊은 나를 비춰보곤 한다. 내 감정이 그 사람에게 결코 닿지 않기에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이다. 때로는 강연을 듣듯, 책을 읽듯 상대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상대의 표현과 반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의 내 감정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진실되게 향하고, 그렇기에 혼자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나는 한 사람이, 어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각과 그 과정에서의 내면적 욕구와 결핍을 어떻게 충족하고 또 갈망했는지를, 정제된 감각으로 담담하게 서술한 표현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을 사실상 모르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토록 깊은 감각에 도달하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래서 나는 고독한 사람이구나. 나의 깊이는 타인보다는 나에게 향해 있구나. 나는 확실히 혼자 있을 때 내 감정을 가장 깊이 느낀다. 반면,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사고와 감정을 기민하게 인식하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주위 분위기나 시각적 자극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사고와 감정의 흐름은 점점 느려지고 단순해지고, 상대의 반응을 예민하게 읽거나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게 된 듯하다. 내 감정선은 주로 내게만 한정되어 있다. 내 기질이 내면만을 향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돌아보는 삶 속에서 의도치 않게 내 감정을 비추는 거울에 만족하는 성향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타인을 바라보면, 그 타인에게서 비친 또 다른 내가 나를 가로막아, 결국 그 사람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때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되기를 바라기도 했었으니, 그저 나에게 이상적으로 좋은 것만을 바랐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로서 살아남기 위한 변화에 따라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고, 이제는 단지 내 자리에 가만히 머무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다가갈 수 없는 관계의 거리마저도 숨죽이며 담담히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 나는 그 사람의 표현을 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직접 그런 감각을 느끼기란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마찬가지로, 이런 나의 모습도 타인에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성장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립되어버린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처럼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의 다른 면들을 보며 살아간다.


본능에 따라 타인에게 끌리지만, 내 감정선은 타인에게 향하기보다 대개 내 안에서 돌고 있으니 그 사실이 때로는 좀 슬프다.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열린 사람이지만, 사회 속의 나에게는 닫힌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사랑하고, 행복하고, 만족하면서도 외롭고, 고독하다. 나는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너무 긴 시간 동안 사회 속에서 타인이 아닌 또 다른 나만을 마주하며 살아왔기에, 단지 그러한 삶을 살아온 끝에 정서적 고립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외롭지만 살아가는 힘, 그게 나에게 새겨진 마음의 무늬다. 슬퍼하면서도 웃는 삶이니, 이것 역시 인간다운 삶이겠지. 어쩌면 이런 내가 투명한 존재감으로 비춰진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 역시 나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닿지 않기에 무해하고, 무해하기에 고립된 삶이다.


2025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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