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여명이 도심에 드리울 즈음에 어둑한 집을 조용히 나섰다. 거리에는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선 사람들이 하나둘 정류소로 향했다. 눈부신 빛을 뿜으며 검푸른 도로를 가르듯 나타난 버스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을 태우고 잠을 깨우는 엔진음을 울리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서 걷고, 또 걸었다. 큰길을 지나 구시가지에 이르니, 어느새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에 홀로 남아 있었다. 이른 골목길을 걷는 어르신들도 보이지 않았고, 이따금 지나가던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흔한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을 타고 퍼지는 골목 소음 위로,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와 간헐적인 새소리만 들렸다. 그 좁은 길가를 걸을 때마다, 터벅터벅 울리는 발소리는 마치 나에게만 들리는 것처럼 귓가를 스쳤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나의 앞길에는 맑은 햇살이 스며들었고, 나는 그 빛에 휩싸인 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주거지를 지나 구시가지가 조금 내려다보이는 중턱으로 향했다.
나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니 구시가지부터 멀리 큰 도심까지 푸른 햇살이 가득 스며있었다. 이대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면 조금 전과 다르게 거리에는 아침 인파들이 북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맑은 고요함에서 비롯된 정적을 더 길게 마주하기 위해 길바닥에 잠시 앉아 먼 곳을 바라봤다. 은은한 빛 속에 아지랑이처럼 움직이는 일상들이 보였다. 그것은 멈춰버린 맑음이었다.
언젠가 이 조용한 순간은 내가 찾지 않아도 나를 찾아와, 내 곁에 머물며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이 정적이 싫어지겠지. 소음 없는 맑음은 잠시 어울리고 싶은 것이지, 늘 함께하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할 뿐이다.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더 천천히 길게 내쉰다. 가슴은 차갑지만, 내 눈빛은 다름없다. 나는 볼 수 없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그 수심이 반짝이듯 보일 수도 있겠지.
2025년 0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