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 살기 위한 선택이 그 선택을 고심하던 과정에서 예견한 후회를 부른들, 결국 내가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피해 선택한 결과이기에 끝내 받아들이게 된다. 더 나은 내 모습이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행동을 거듭하는 일은 아픈 가슴을 안고 나아가는 고독한 길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 혼자만의 변화에 국한되어 원하던 상황은 끝내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의 성숙은 무력감을 견디기 위한 것이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 희미한 애환의 잔향은 비슷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무거운 감정에 덧씌워지고, 그 질긴 애환을 찢어내지 않는 이상 더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억누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자기 파괴적인 불안 속에서 자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변화를 선택한 내 삶을 긍정하며 본래 기질을 조절해 갈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보상도 보장도 없을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내면의 상처도 같이 커가는 성장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새로운 나를 꿈꾸다가도, 다시 익숙한 나로서 살기 위한 선택을 반복하곤 한다. 끝끝내 상처받다 해소하려 하고, 감내하다 충족하려 한다. 결국, 너무 많이 느끼고 알아버린 내가, 제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 나를 내려다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가 내 살갗을 스칠 때 그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다시금 감정의 폭풍에 다가선다. 점점 지쳐가는 상황에서도 그 폭풍에서 스며 나오는 미혹을 무의식적으로 갈구하며 떨쳐내지 못한다. 그저 지금의 최선에 스스로 납득하며 간혹 얻는 만족을 힘든 길의 합당한 보상으로 여길 수도 있다. 결국,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이루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마치 실현 가능할 듯한 감각으로 왜곡하는 방식을 깨우쳐, 그 안에서 만족을 꾸려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익숙한 변화에 다가설 때의 혼란에 중독된 것처럼, 갈망하고, 다가서고, 상처 입고, 물러서며, 그에 따른 만족과 아픔을 마음 깊이 새긴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성숙한 태도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끝에는 변화라는 미명 아래 나로서 살기 위한 선택을 되풀이하다 딱딱하게 굳어진 내가 있을 뿐이다. 분명 변화했지만, 나이기에 가능한 변화 속에서 오히려 변치 않는 나의 기질만 절절히 깨닫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온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살아온 세월 동안 욕심을 부려 나에게 이로울 것으로 생각한 감정들을 많이 안으려 한 만큼 약간 상처 입고, 조금 지치고,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지나온 길목마다 사랑이 있고, 행복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이 있고, 행복도 있다. 나의 왜곡이 만든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대변할 수 없는 나만의 삶에 진심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족할 뿐이다. 결국, 익숙한 만족과 행복에 다가서기 위한 쳇바퀴 속에 있다는 걸 알지만,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이제는 단지 의식적으로 이미 익숙한 변화에 부딪혀 보곤 한다.
나는 해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내려갈수록 불어나는 압력에 짓눌린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 무게마저 왠지 희미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저 끝 모를 곳을 향해, 아무 감정도 없이, 또다시 걸어갈 뿐이다.
2025년 0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