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하나의 관계, 한 번의 사건처럼 결국 기억으로 남게 될 장면 속에서 매번 기대한 만큼 만족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내 선택에 따른 결과가 그동안 시간을 들이고 신경을 써온 만큼의 인과적인 반응이 나타난 것뿐이더라도, 그 모든 과정을 긍정한다. 내 바람과 반대로 기대를 낮춰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사소한 반응에도 감정의 잔물결을 느끼고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삶에 필요한 의미를 새기며 살아가게 된다. 이미 경험적으로 기대를 조율하는 삶에 들어섰고, 이런 현실을 가늠할 정도로 성장했기에, 한편으로는 더 신중하게 판단을 이어가면, 오히려 내가 바란 만족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한다. 그러나 지쳐가는 세월 속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지고,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에서조차 애써 만족을 찾다 보면, 끝내 바꿔낼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모든 순간이, 어쩌면 언젠가 허무하게 스쳐갈 미래로 아른거리기도 한다.
사회가 제시한 삶과 그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역사적으로 형성된 그 현실에 나를 끼워 넣게 되면서, 마음 상태에 따라 내 강점을 신뢰하기보다, 내 삶을 부정하게 하는 외부의 기준에 민감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조금 지칠 때면 내 삶의 결말이 나에 대한 부정으로 추정되지 않도록, 그 마주침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회가 바라는 기대를 느끼며 그 기대에 순응할 때 생기는 만족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가 실현할 수 있는 기대에 더 높은 가치를 두기에, 사회에 순응해 얻은 만족조차 내 기준에 따라 선별하게 되고, 내 삶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반대로 내가 부합할 수 없는 가치는 애써 외면하고 만다. 내 삶을 긍정하려는 방편이다. 그러나 내 기대를 충족하든, 못하든 그 기대는 언제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만족과 괴리가 있기에 무언가를 이루어도 여전히 어딘가에 미치지 못한 듯한 허전함이 스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이 고독감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의식하고, 조율하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삶을 자각해 내려 해도, 현실은 단단하고, 내 마음은 그에 비해 부드럽기에, 해변으로 밀려가는 파도처럼 때때로 형태와 속도가 변할지언정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며 비슷한 삶을 반복할 뿐이다. 나는 그 파도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결코 만족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 감정을 아직 해석되지 않은 상태로 마음속 어딘가로 던져뒀다. 이루어도 채워지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기대하게 되는 그 감정은 바쁜 삶 속에서 서서히 잊히기도 한다. 나를 괴롭히던 기억을 잊어가듯, 그 감정 역시 잊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고 되뇌지조차도 않고, 더 떠올리지도 않는 사이에 정말 잊힌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뎌질 뿐 사라지진 않는다. 내가 살아낸 삶에서 비롯된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낡은 잔재의 형태로 그대로 남아 있다.
새로운 기억과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가도, 그것마저 반복된 흐름으로써 익숙해지면, 문득 정적 속에서 한때 규정하지 못했던 감정이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잠겨 있던 그 감정이 떠오를 때면, 지금까지의 삶에 믿음을 더하는 방식으로 반추하여 쓰기도 한다. 그 탓에 정리되지 않은 감정 속에서 과거의 순간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걸어온 길이자 내가 원하는 형태의 만족이라고 여기곤 만다. 마치 소모되지 않는 연료처럼 필요할 때 꺼내 쓰고, 다시 마음속에 던져둔다. 마음에는 삭제 버튼이 없으니, 이렇게 안고 살아가게 된다. 단지 이룰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도 변하지 않기에, 이제는 삶의 현실이 아닌, 내 마음의 무게추로 품고 살아갈 뿐이다. 머뭇거리게 되는 세월 속에서 망설임이 생길 때마다, 놓고 싶으면서도 놓고 싶지 않은 이 감정을 떠올리며, 조금 더 단단해진 나로서 삶에 필요한 판단을 이어간다. 그냥 그런 감정과 함께 사는 날들이다.
2025년 0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