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유지하려면 최저한의 경제력이 필요하고, 변함없는 만족을 누리려면 충분한 자산이 계속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산이 많아질수록 눈에 보이고, 피부에 닿으며, 내 마음이 충만해지고, 나를 향하는 타인의 태도에서 더욱 부드럽고 분명한 변화가 나타난다. 경제적 성공이 완전한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인정받기도 하기에 누구나 돈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감하며, 그에 따라 경제적 자립에 몰두하는 분위기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사랑, 건강, 개인적 성취 중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모든 가치는 결국 현실적으로 체감되는 자산에 만족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는 가치로 실현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바라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립에 기반한 가시적인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삶은 단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성장하지만, 본능적으로 내면에 머무르기보단 사회가 인정하는 즐거움과 성장을 좇게 된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삶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 한다. 그렇다 보니 어떤 가치에서 얼마나 깊은 만족을 얻을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어떤 가치를 목표로 삼아야 그것이 실제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점차 깨닫게 된다. 자산 증식과 그 가치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거나, 신체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 것을 추구하기도 하며,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에서 긍정의 기운을 얻길 바라기도 한다. 혹은 무절제한 생활로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동시에 자신을 소진하는 삶을 감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각과 망설임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이어지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익숙해진 가치에 계속 만족하거나, 그 가치가 줄 수 있는 한계까지 다가가거나, 자기만족의 근원을 깨닫고 새로운 가치를 좇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민과 후회를 반복하고, 중독에 빠지거나 의지를 다지며, 자신이 주도해 온 삶을 조용히 사랑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 좋으면서도 무섭다. 내가 호감을 느낀 이들과 함께 보내는 순간은 즐겁지만, 시간을 나누어도 결국 그들의 깊이와 방향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내가 그들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을 모르는 만큼 다가가기 어렵고, 아는 만큼 조심스러워져서 가볍게 다가서지 못한다. 어쩌면 애초에 나와 그들 사이에 놓인 현실적 괴리를 깊게 보다 보니, 반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지도 모른다. 나는 소비를 좋아하지만, 돈을 벌고 쓰는 것보다 심신의 안정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낀다. 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랑을 품고, 그 사랑에서 비롯된 여유로 내면의 고독을 마주하며, 나를 더욱 깊이 인식하는 데서 삶의 진짜 만족을 찾는다. 이제는 이미 만족에 이른 삶을 조용히 가꿔가며, 때때로 내 안의 고요한 정적을 바라본다. 현실을 따르되, 내가 만든 내면에서 숨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삶에 호감을 느낀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 호감은 내 삶이 깊이 공감되거나 이해되지는 않지만, 무해하고 실존하기에,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싶은 감정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나는 바다 저편에서 환히 빛나는 도심을 바라보고, 그들은 도심 속에서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불빛을 바라본다. 나는 심적 균형을 통해 내적 만족을 실현해 가지만, 실상은 내면에 기울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 기울어짐은 결국 관계에도 스며들어, 나의 이상을 실현할수록, 동시에 관계의 불균형에서 오는 고독도 함께 깊어진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들의 기억에 남지만, 현실적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점점 잊히기 쉬운 존재가 되어간다. 다만, 이 고독은 애초에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이고, 내 삶에 만족하기 위한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제는 이 고독이 때때로 불안을 일으키면, 나는 그 불안에 반응하며 나를 돌아보고, 그 순환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게 조용히 만족한다.
겉으로는 멈춘 듯한 삶이지만, 내 안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서 내가 호감을 느낀 이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그들이 규정할 수 없는 나를 기억 속에 접어둘 때, 나는 그들의 뭉근한 눈빛을 기억했다. 조금의 소비에 만족하고, 깊은 사랑이 내 마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에,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저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삶을 규정하겠지만, 나는 그 생각들의 경계에 머물러 바라보는 것이, 나로서 조용히 살아가는 삶 속에서 타인과 사회에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한다.
2025년 06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