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질 사람의 사랑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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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앞선 세월을 살아가는 연인에게 나는 남겨질 사람이다. 함께하는 삶 속에서 연인의 시간대를 같이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연인은 이미 지금의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연인에게 나는 언제나 먼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사랑이 같은 교차점에서 만나 서로의 진심을 향해 깊이 연결되어, 둘 사이에 물질적인 필요 없이,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 사이에 변치 않는 세월의 차이만큼 물리적인 차이는 점점 더 뚜렷이 느껴진다. 삶의 유한성이 더 분명히 느껴지는 순간부터, 신체 기능은 저하되고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생긴다. 그리고 부모님도 점점 깊어지는 피로와 고통 속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기에 그에 따른 걱정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연인은 매 순간 걱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점점 더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해 내고 있기에 이제는 예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연인은 자신의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른다고 느낄 수 있다. 무언가를 하기까지 더 많은 생각이 따라오거나, 현실적인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조금 더 집중이 필요하고, 조금 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 와중에도 나에 대한 연인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나도 그러한 연인을 바라보며 예전과 같은 사랑을 느낀다.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연인을 처음 만난 순간과 그 시기에 느꼈던 강렬한 매력의 이미지가 맴돌고, 가끔 예전의 모습을 기대하거나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을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애틋하게 바라보려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즐거움을 나누겠지만, 이제 나의 바람보다는 연인의 삶에 내 삶의 시간을 점점 더 맞춰가야 한다. 연인의 시간은 나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연인은 남겨질 나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감당하려 할 테니, 나도 연인에게 조금은 다른 방식의 배려와 사랑을 이어가야 하고, 그렇게 하려 한다.


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고 전해지지도 않겠지만, 내가 눈에 보이는 노력을 기울이면 현실 속에서 연인에게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삶에서 나의 의식에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경계들이 생겨났지만, 나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백지처럼 그 어떤 경계와 편견도 없다. 연인은 이런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나는 그 사랑 덕분에 별다른 방황 없이 나의 삶에 이어 연인의 삶까지, 더 오랜 시간을 겹쳐 살아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각자가 바란 사랑이 맞닿으니 서로에게 완전한 사랑이었고, 이제 그 사랑도 조금씩 모양이 바뀌고 있다. 사랑은 변한다. 조금 먼 미래에도 같은 순간을 느끼며, 손을 마주 잡고, 미소 짓기 위한 변화다. 그때에도 나는 지금처럼 울고, 웃고, 때로는 장난치며 투정 부릴 테지만, 조금은 더 성숙하고 순전함이 깃든 모습이 아닐까 한다. 먼 훗날, 상실이 찾아와도 지금의 이 마음이 다시 나를 돌보게 되겠지.


가장 슬플 사람은 연인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도래했을 때 나는 슬퍼하면 되지만, 연인은 슬퍼할 수 없다. 서로에게 끝이 있는 비가역적인 사랑이지만, 이런 불균형을 서로 깊이 인식하기에 더 깊은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무너지지 않고, 더 깊이 껴안는 사랑이다.


2025년 06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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