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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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눈빛과 표정에서 드러난 느낌이 미묘해도, 이어진 태도를 통해 상대가 그 시간 속에서 느낀 감정을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된다. 이 짐작의 깊이는 내 마음속에 상대에게 허용한 자리의 크기와 내가 규정한 관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관계의 방향성이 확실하지 않아도, 상대에 대한 가치를 크게 여길수록 나에 대한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이 어떠한지를 짐작하는 데 더 오랜 시간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가 규정하지 않았고, 사람들로부터 쉽게 공감받기 어려운 종류의 관계일수록 짐작의 범위를 더 세분화하며 조심스럽게 다루게 된다. 누군가 내게 호감을 느껴도 내가 호감이 없다면, 그 마음을 살피기보단 가볍게 선을 긋고 그 관계의 흐름과 방향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내가 호감을 느낀 상대라면 그 상대가 나에게 거리를 두어도, 그 거리에서 편안한 관계가 계속되도록 내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 크면 때때로 나를 소모하면서도, 조용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사람마다 이 짐작을 유의미하게 여길 수도 있고, 기억된 장면과 감정을 통한 짐작보단 눈앞의 현실에 더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존 본능에 기반한 고유한 삶의 방식에 따라 짐작의 깊이와 정도가 다를 뿐, 결국 자기 삶을 지키며 살아내는 관점에서 자신에게 유의미한 짐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짐작이 관계에 이로울지는 불분명하다. 본능에 따라 서로 공통으로 짐작한 정서적 연결이나 행동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성향을 수용해 가게 되지만, 본성이 지나치게 다르면 서로 느끼는 만족의 온도차가 점점 커져,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관계에 대한 기대가 약해질 수 있다. 나는 감정의 서사가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쌓여야 필요한 짐작을 할 수 있는데, 상대는 정확한 개념을 규정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필요한 짐작을 할 수도 있다. 이 차이는 각자 고유한 사람이기에 있는 차이지만, 자기 본능과 서로에 대한 수용 정도에 따라 불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경험적으로 내 본성을 알고 따르되, 내가 끌리는 짐작이 아닌 이 관계에 필요한 짐작을 하기 위해 애쓴다. 자연스럽게 필요한 짐작을 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내 일부 본능을 거스르는 다짐을 반복해야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쉽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그 다짐을 기꺼이 감내한다. 이런 조율은 삶의 묘미라고도 생각한다. 이제는 서로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기에 사소한 다름은 가볍게 수용하는 편이다. 나는 상대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상대는 자신이 조율한 상황에서 내가 충분히 반응하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서로가 보인 방향이 긍정적 관계를 지향하는 것을 알기에, 예전보다 더 가볍게 받아들인다. 결국, 두 사람이 바라는 관계의 의미는 둘만이 알 수 있다.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할 수 있다.


사회와 주변 사람의 시선에서는 그 관계가 정말 좋은 관계인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거나 삶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질과 성향이 다르든, 비슷하든 두 사람이 그 관계가 계속되길 바라면, 그 관계는 규정되어 보이는 현실을 넘어 이어진 관계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려는 사회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다. 이러한 관계의 구심점은 서로를 향한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애정이거나, 그 관계의 유일성이 지닌 가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매번 통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곁에 두고 싶은, 서로가 주고받지 않아도 근원적인 충족을 얻을 수 있기에, 서로를 이유 없이 필요로 하는 관계다.


그래서 나는 짐작한다. 내 삶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면서도, 내 삶에 필요한 관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와 상대에 관해 짐작한다. 상대를 온전히 알 수 없고, 그 삶에 대해서도 일부만 알 수 있을 뿐이지만,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짐작이다. 관계를 규정하게 되는 시간 속에서 종종 나를 소모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저 상대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간다. 드러내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유한한 시간을 함께 느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나뭇잎이 떨어지듯 어느 순간 지나가는 관계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지나가도 더 바라지도, 잊히지도 않는 그런 관계다.



2025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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